『정실주의: 조합주의 국가의 부상, 1849–1929』,
패트릭 뉴먼 지음(루트비히 폰 미제스 연구소, 2026년, 412쪽)
이 책은 패트릭 뉴먼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라스바디언 경제사학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이러한 평가는 이 시리즈의 첫 권인 『정실주의: 초기 미국의 자유 대 권력, 1607–1849』(미제스연구소, 2021년) 을 통해 이미 확고해졌다. 라스바드와 마찬가지로 뉴먼은 역사를 자유와 권력 사이의 투쟁으로 바라본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자유시장에서 평화롭게 협력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이러한 협력은 분업의 이점을 활용해 생산을 확대할 수 있게 한다. 거래는 교환 당사자 모두가 이익을 얻으리라 기대할 때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거래에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어떤 사람들은 이처럼 바람직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의 부를 빼앗으려 한다. 이러한 약탈자들이 국가를 세운다. 국가는 착취의 도구로 볼 수 있으며, 시장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법과 질서를 제공하기 위해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아니다. 법과 질서는 자유시장에서 경쟁하는 민간 보호기관들이 제한된 정부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국가는 타인의 부를 빼앗으려는 기업계와 금융계의 이익집단과 결탁하여 시장경제에 끊임없이 간섭한다. 때로 국가는 시장을 전면적인 계획경제체제로 대체하려 하지만, 이는 경제 붕괴와 전체주의적 통제를 초래한다. 그러나 국가가 만들어내는 것은 대개 미제스가 “간섭받는 시장경제(hampered market economy)”라고 부른 체제다. 뉴먼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그가 “정실주의(croynism)”라고 부르는 이 간섭받는 시장경제를 자유시장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시장을 향해 제기하는 불만 대부분은 정실주의 때문에 생긴 문제다.
뉴먼의 기념비적인 성취는 정실주의의 역사를 매우 상세하게 서술한 데 있다. 그는 방대한 자료를 활용하여 미국 경제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사실들을 밝혀낸다. 라스바드가 즐겨 사용한 표현을 빌리자면, 뉴먼은 역사적 사건을 “권력과 재물”을 차지하려는 투쟁으로 바라보며, 여기서 권력은 주로 재물을 더욱 불리는 수단이다. 뉴먼이 사상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사상을 주로 특정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합리화하는 논리로 본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는 자유시장에 진정으로 헌신했던 잭슨주의 민주당원들이 간섭주의 체제를 영구히 바꾸는 데 실패한 이후에 특히 그러했다. 이 실패 이후 모든 주요 정치세력은 정실주의의 옹호자가 되었다. 정책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우선한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였다.
아래에서는 이 책이 다루는 수많은 논점 가운데 극히 일부만 살펴보겠다. 그러나 기업이 경제를 지배한 정도와 그 전모를 제대로 가늠하려면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보길 권한다. 여기서는 에이브러햄 링컨과 그가 미국에 강요한 ‘미국식 체제(American System)’에 초점을 맞추겠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링컨은 전설 속의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부유한 기업전문 변호사였다.
1850년대 링컨은 일리노이 중앙철도와 일리노이 은행, 컬럼비아 기계제조회사 같은 여러 기업을 대리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 변호사였다. 링컨과 일리노이 중앙철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는 철도회사 설립인가를 놓고 다투던 여러 진영 중 한쪽의 로비스트로 일했으며, 법적 분쟁에서도 이 회사를 자주 변호하곤 했다. 한 사건에서는 일리노이 중앙철도에 5,000달러를 청구했는데, 이는 당시 주지사 연봉의 세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링컨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높은 보호관세에 대한 열렬한 지지였다.
보호무역주의자들은 곧 이 법안[모릴 관세법]을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의 핵심 강령으로 삼기로 했다. 필라델피아 언론에서 링컨을 열렬히 밀었던 헨리 캐리에 따르면, 공화당은 에이브러햄 링컨을 후보로 지명함으로써 “보호무역을 다시 채택했다.” 보호관세 문제는 링컨의 선거 전략에 매우 중요했던 제조업 중심지 펜실베이니아와 뉴저지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주에서 선거인단 31표를 얻지 못했다면 링컨은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링컨은 한 친구에게 “펜실베이니아의 관세를 지지하는 휘그 세력에게 가장 큰 빚을 졌으며(그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하게 털어놓았다.
위대한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그 관세법을 달리 평가했다.
미국식 체제는 통일된 영토에 의존했고, 링컨은 이를 반드시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연방정부가 노예제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헌법 수정안인 코윈 수정조항까지 지지했다. 그러나 남부연합은 여전히 공화당을 신뢰하지 않았고…… 평화로운 연방 탈퇴를 원했다. 3월 링컨이 취임하자 데이비스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섬터 요새를 비롯한 연방군 요새들을 매입하고 국가부채 가운데 남부의 몫을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링컨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요새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 군사고문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섬터 요새에 무장 보급군을 비밀리에 파견하기로 했다. 링컨에게 이러한 보급 작전은 남부를 자극해 먼저 총을 쏘게 만들고, 그로써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해 4월 실제로 남부가 포격을 시작하자, 북부연방의 선전가들은 이를 남부연합이 아무런 도발 없이 감행한 일방적 공격으로 재빨리 규정했다. 그 결과 연방 탈퇴에 동정적이던 대서양 중부 지역의 많은 사람도 남부에 등을 돌렸다.
링컨이 일으킨 불필요한 전쟁은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평화롭게 연방을 탈퇴하고자 한 주들을 상대로 링컨이 미국식 체제의 침략적인 국가주의를 적용하면서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남북전쟁은 엄청난 대가를 요구했다. 70만 명 이상, 즉 남북부 전체 인구의 2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최소 5년치의 부의 축적이 물거품이 되었다. 1860년대 민간부문의 경제성장은 부진했고, 1인당 실질소득은 그 10년 동안 3퍼센트 감소했다. 남부는 정치적·경제적으로 초토화되었다. 이러한 해로운 결과는 남북 양쪽에서 흑인을 향한 백인의 적대감을 더욱 악화시켰다.
우리 라스바디언들은 주류 학계가 우리의 연구를 주목하지 않는다고 자주 한탄한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질 조짐이 보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토머스 사전트는 『정실주의』의 서문을 쓰고 뉴먼을 높이 평가했다.
뉴먼의 『정실주의: 조합주의 국가의 부상, 1849–1929』는 사상과 사적 이해관계의 네트워크가 역사적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이 책은 1861년 에이브러햄 링컨의 대통령 취임과 그에 뒤이은 11개주의 연방 탈퇴로 인해 공화당이 민주당 대통령들과 역대 의회가 저지해왔던 휘그·공화당의 오랜 큰정부 구상들을 어떻게 시행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것은 전국적 은행제도,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위한 연방 보조금, 그리고 관세였다. 뉴먼은 19세기 후반 산업구조의 변화를 새로운 기술과 다른 나라들의 무역·통화정책, 그리고 경쟁을 제한한 미국의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서술하고 해석한다. 또한 일부 정부 규제를 카르텔을 강제하고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한 머레이 라스바드의 견해를 더욱 발전시킨다. 민간 카르텔의 구성원들은 합의를 너무 자주 어겼고, 카르텔의 독점이윤은 신규 경쟁자들을 끌어들였다. 그러자 업계 단체들은 정부를 움직여 정부 규제위원회로 위장한 카르텔을 만들게 했다. 뉴먼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규제 포획”에 관한 라스바드와 다른 학자들의 설명을 더욱 발전시킨다.
사전트는 라스바드를 깊이 연구했다.
머레이 라스바드의 『진보주의 시대』(2017년)와 『미국 화폐·은행의 역사』(2002년)의 일부는 비어드의 가설을 떠올리게 하고, 다른 부분은 호프스태터의 견해를 떠올리게 한다. 라스바드는 『미국의 대공황』(1963년)에서 허버트 후버가 훗날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바로 그 잘못된 간섭주의 정책들을 어떻게 시행했는지를 설명했다. 후버와 루스벨트가 유사한 정책을 추구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시행된 간섭주의 정책에 대한 두 사람의 공통된 신념을 반영했다. 당시 두 사람은 모두 윌슨 행정부의 주요 인사였다.
패트릭 뉴먼은 미제스 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하는 동료다. 하지만 내가 『정실주의』를 더없이 강력하게 추천한다고 해서 정실주의를 저지른다는 비난까지 받지는 않을 것이다.
썸네일 출처: X(구 트위터) Patrick Newman P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