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Self-Ownership and the Right to Self-Defense (게재일: 2024년 3월 23일)
정당방위권은 자신의 신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고 합리적인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오래된 보통법상의 권리이다. 에드워드 코크(Edward Coke) 경(卿)이 1604년에 [표현](https://oll.libertyfund.org/quotes/sir-edward-coke-declares-that-your-house-is-your-castle-and-fortress-1604)했듯이,"누구에게나 자신의 집은 침해와 폭력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는 성이자 요새와 같다. … 도둑들이 강도나 살인을 목적으로 어떤 사람의 집에 들어왔을 때, 집주인이나 그의 하인들이 자신과 집을 방어하기 위해 그들 중 누구를 죽이더라도 이는 중범죄가아니며, 그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합리적인 물리력의 의미는 항상 당사자들의 의도를 포함한 사건의 사실관계에 크게 좌우되어 왔다. 코크가 묘사한 상황에서 재판이 필요해진다면, 법원은 침입자들이 실제로 강도나 살인을 의도한 도둑들이었거나, 적어도 주택 소유자가 그렇게 믿은 데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물리력을 사용한다면 본질적으로 공격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행위가 단지 정당방위를 가장한 살해가 아니었음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타인을 쏜 뒤 그를 침입자로 생각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오스카 피스토리우스(Oscar Pistorius) 사건이 그러했다.
공격자가 먼저 총을 쏘았다면, 맞대응으로 총을 쏘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려운 경우는 공격자가 비무장이거나 타고난 무기인 두 주먹밖에 없을 때 발생한다. 1904년 미시간 로 리뷰(Michigan Law Review)에 소개된 옛 보통법의 규칙은 다음과 같았다.
“공격이 반드시 치명적 무기를 사용하여 이루어질 필요는 없었다. 주먹만으로 한 공격이라도 사망이나 중대한 신체적 상해를 입힐 명백한 목적과 능력이 있었다면 정당방위로 상대방을 죽인 행위를 정당화하기에 충분했다. … 그러나 단지 주먹만으로 가한 폭행은, 신체적 힘에 큰 격차가 있더라도, 중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의 분명한 표출 없이는 상대방을 죽인 행위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공격자의 중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 즉 사망이나 중대한 신체적 상해를 가하려는 의도는 오랫동안 공격자를 죽이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핵심 요소로 취급되어 왔다. 그러한 의도는 사건의 모든 정황 속에서만 판단될 수 있다. 단순한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범죄를 저지를 의도나 실제 능력 없이도 “죽여 버리겠다!”라고 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도 죽일 의도와 능력이 분명히 드러날 수 있다.
비교법의 맥락에서 우베 슈타인호프(Uwe Steinhoff)는 논쟁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격자가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정당방위는 적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격은 반드시 물리력을 수반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공격이란 인간의 행위에서 비롯된, 법이 보호하는 이익(즉, 권리)의 침해에 대한 모든 위협 또는 실제 침해를 말한다.” 슈타인호프는 ‘공격’과 ‘해악’을 구별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은 공격이 초래할 해악의 정도가 어떠할지, 혹은 해악이 실제로 발생할지 기다리지 않고도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왜소하고 허약한 사람이 해를 가하려는 의도로 역도 챔피언에게 달려들지만, 그의 주먹이 피해자에게 아무 효과 없이 튕겨 나가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실제로 아널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에게도 한때 이런 일이 있었다. 슈타인호프의 견해에 따르면, 이 경우 피해자는 공격자보다 훨씬 크고 강하더라도 합리적인 정도의 물리력으로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이런 사례를 드는 이유는 현행법을 논평하기 위함이 아니다. 현행법은 법률과 판례로 지나치게 촘촘히 규정되어 있어 간략하게 요약할 수 없다. 여기서의 목적은 정당방위의 경계를 확인하는 데에 따르는 몇 가지 어려움을 부각하는 것이다. 법률 규정은 대체로 상세하며 수많은 요건과 예외를 포괄한다.
예컨대 뉴욕주에서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경우가 아니면'치명적인 물리력'을 사용할 수 없다.
“행위자가 상대방[공격자]이 치명적인 물리력을 사용하고 있거나 곧 사용하려 한다고 합리적으로 믿는 경우.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자신과 타인의 완전한 신체적 안전을 해치지 않고 후퇴함으로써 그러한 행위의 필요성을 피할 수 있음을 그가 알고 있다면, 행위자는 치명적인 물리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말로 규정하기는 쉽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신과 타인이 완전히 안전하게 후퇴함으로써 치명적 물리력을 사용할 필요를 피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치명적 물리력이 사용되거나 위협받는 많은 상황에서는 ‘완전한 신체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슈타인호프의 예에서도 사악한 왕비를 제압하는 것 외에는 백설공주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은 좀처럼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백설공주를 구할 다른 방법이 없다면, 사악한 왕비가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주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물리력으로 왕비를 제압하는 것은 분명 허용된다.”
실무상 치명적 물리력 이외에 위협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는 점을 보이는 것은 흔히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대개 순식간에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쟁점은 행위의 합리성을 판단할 때 단지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실제로 그러했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방위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과, 특정 사건의 사실관계에서 방어행위가 정당화되는지를 판정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자연법과 자연권
자연법의 관점에서 정당방위권은 자기소유권의 한 요소이다. 정당방위는 폭력적 침해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할 권리를 뜻한다. 머레이 라스바드가 설명하듯이,
“모든 사람이 정당하게 보유한 재산에 대한 절대적 권리를 가진다면, 그 재산을 지킬 권리, 즉 폭력적 침해에 맞서 폭력으로 이를 방어할 권리가 그에게 있다는 결론이 따른다. … 어떤 사람이 재산을 소유하면서도 공격으로부터 이를 방어할 권리를 부정당한다면, 그 소유권의 매우 중요한 측면이 그에게 부정되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는 출발점일 뿐이다. 정당방위권의 범위를 여전히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스바드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개인의 신체와 재산에 관한 정당방위권은 어디까지 미치는가? 기본적인 답은 이렇다.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기 시작하는 지점까지이다. … 따라서 방어적 폭력은 사람의 재산에 대한 실제 침해나 직접적인 침해 위협에 대해서만 사용될 수 있고, 개인의 소득이나 재산 가치에 닥칠 수 있는 비폭력적 ‘해악’에 대해서는 사용될 수 없다. (강조 추가)”
구체적 사건에서 ‘직접적인 침해 위협’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결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라스바드의 예처럼 “누군가 길에서 당신에게 다가와 총을 꺼내 들고 지갑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경우에는 위협이 명확하다. 그러나 그는 침해나 침해의 위협이 반드시 ‘현실의 물리적 공격’일 필요는 없으며, 협박이나 사기도 포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기는 ‘암묵적 절도’이므로 재산에 대한 위협이라는 것이다. 다만 라스바드는 위협이 직접적이고 공공연하며 명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위협은 ‘명백하고, 즉각적이며, 직접적’이어야 하며, ‘모호하거나 미래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라스바드는 “불가피하게 모호하거나 불명확한 행위가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침해의 위협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라는 점을 요구하는 데 가능한 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 공격이 실제로 시작되었다는 입증책임은 방어적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있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방어적 폭력은 폭력에 대응할 때에만 사용할 수 있다.“길 건너편의 남자가 화난 표정으로 당신에게 침해를 예고하는 듯이 보였다는 이유로 그를 쏘는 것은 명백히 터무니없고 범죄적인 침해”일 것이다. 또한 폭력적 위협에 대한 대응은 비례적이어야 한다. “범죄자 또는 침입자는 자신이 타인의 권리를 빼앗은 범위만큼 자신의 권리를 상실한다.” 예를 들어 상점 절도범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은 비례적이지 않다. “사실상 상점 주인은 절도범보다 훨씬 더 큰 범죄자가 된다. 그는 자신의 피해자를 죽이거나 다치게했고, 이는 최초의 상점 절도보다 훨씬 더 중대한 타인의 권리 침해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점에서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로 사람을 즉결 처형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하지만 이는 침입자가 오직 상점 절도만을 의도한다는 점이 명확한 단순한 경우를 전제한다. 단순한 상점 절도범과, 당시 확인 가능한 정황상 중대한 신체적 해악을 가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합리적으로 보이는 침입자를 구별할 수 없는 경우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토니 마틴(Tony Martin) 사건에서는 그가 총을 쐈을 때 침입 절도범들이 달아나는 중이었다는 사실이 결론을 좌우했다.
“29세의 피어런(Fearon)과 16세의 프레드(Fred)는 8월 20일 저녁 노팅엄셔 뉴어크에서 노퍽 엠네스 헝게이트에 있는 반쯤 폐허가 된 농장 건물 ‘블리크 하우스’를 털기 위해 왔다. … 이들의 움직임을 들은 마틴은 위층 침실에서 내려와 펌프액션 산탄총을 발사했다. 마틴은 정당방위로 행동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그가 두 사람을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가 침입 절도범들이 나갈 때가 아니라 들어올 때 총을 쐈다면 사건은 달라졌을 것이다. 침입자들이 단지 물건을 훔치려 했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신체적 해악을 가하려 했는지 그에게는 명확하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순찰 중인 군인처럼 침입자들에게 “멈추고 목적을 밝혀라!”라고 외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를 가하려는 범죄자 대부분은 그런 요구에 평화롭게 응할 가능성이 낮다.
보통법의 맥락에서 이런 쟁점들은 모두 합리적인 물리력의 구성 요소이다. 직접적이지도 즉각적이지도 않고, 단지 추측적이거나 먼 장래의 위협에 대응하여 치명적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평화적 분쟁 해결
이러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보통법 관할권에서는 오랫동안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강하게 선호해 왔고 물리력의 사용을 가능한 한 제한해 왔다.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1997년 자크 대 스틴버그 홈스 주식회사(Jacque v. Steenberg Homes, Inc.)라는 무단침입 사건에서, 국가가 재산권 침해를 시정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력구제’에 의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법원은 이처럼 자신의 권리를 방어하기 위해 물리력을 사용하는 일을 억제하려 한다.
“법원은 맥윌리엄스(McWilliams) 사건에서 배심원이 모욕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결투 관행을 방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결투는 오늘날에는 드문 자력구제 방식이지만, 뻔뻔한 무단 침입자를 마주했을 때 경찰이나 법원을 통하지 않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드는 분노한 토지 소유자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 정책의 목표는, 표현을 달리하면 ‘평화를 보전’하거나 ‘원고가 사소한 모욕적 행위를 법정에 가져오도록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화가 난 나머지 성급히 결투를 신청해 분쟁을 해결하는 일을 막는 데 있다. 예컨대 앞서 인용한 미시간 로 리뷰의 사건은 자녀들의 성가신 행동을 두고 부모들이 다투던 경우였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당일 아침, 피고인들은 홀가스(Hallgarth)의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고, 홀가스가 그들을 불러세웠다. 학교에서 그레이(Gray)의 자녀들과 관련해 발생한 문제를 두고 격한 대화가 이어졌다. 홀가스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맨주먹 외에는 어떤 무기도 없이, 그레이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갔다. 이에 그레이는 권총을 꺼내 들고 그에게 멈추라고 경고했다.”
정당방위를 법률로 규율하는 취지는 이웃과 분쟁이 생겼다고 울타리를 뛰어넘어 주먹다짐을 하는 일을 억제하는데 있다. 대부분의 관할권에서는, 특히 임대차 관계에서, 소유자의 권리 침해에 대응할 때 당국에 신고하는 방식을 우선시하며 재산 분쟁에서의 자력구제를 금지하거나 강하게 억제한다.
“예견할 수 있고 따라서 불필요한 당사자 간 직접 충돌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문에 자물쇠를 채워 점유자의 출입을 막는 식의 자력구제는 여전히 금지할 필요가 있다. … 이런 상황에서 폭력과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알아보는 데 신비주의자나 심리학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점유자와 대면해서 하든, 점유자가 없는 틈에 밤도둑처럼 하든, 퇴거를 강제하려는 시도는 도발적 행위일 수 있다. ‘임대 주택이든 담보 주택이든, 한 사람의 집을 은밀히 빼앗는 것보다 극단적 폭력을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더 위험한 상황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리버테리언들이 물어야 할 것은 국가가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정당방위권을 제한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것이다. 국가가 기생충이고 국가가 하는 모든 일이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인간이 성급하게 격분하여 무기가 있든 없든 서로에게 닥치는 대로 공격하려 들기 쉬운 상황에서 어떻게 평화적 상호작용을 유지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인간 본성이 그러한 이상, 리버테리언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한 민간 보호기관에서도 이 문제는 발생할 것이다.
분쟁 해결 과정에서 폭력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평화적 판정 절차를 장려하는 것은 분명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라스바드에 따르면, 그러한 판정을 통해 보호되는 권리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아니라 정당방위권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아마 자유시장에서는 대다수 사람이 사회 구성원의 가장 폭넓은 동의를 이끌어낼 절차를 갖춘 민간 제도와 보호기관을 선택하여 자신을 방어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누가 무죄이고 누가 유죄인지를 가려내는 가장 실용적인 근사 방법으로 그 기관들의 결정을 따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장에서 정당방위를 실현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찾아내는 공리주의적 문제일 뿐이며, ‘절차적 권리’ 같은 그릇된 개념을 함의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재 절차나 그 밖의 제도적 분쟁 해결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정당방위권을 약화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당방위권은 사회나 국가가 아니라 재산권을 침해당한 개인에게 귀속된다. 그러므로 개인은 자기소유권에서 파생되는 권리로서 무기를 소지할 자연권도 가진다. 라스바드가 설명하듯이, “모든 사람은 정당방위든 그 밖의 모든 적법한 목적이든 무기를 소지할 절대적 권리를 가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