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권력을 먼저 호출한다. 사고가 일어나면 감독기관의 권한을 제고하고, 제도가 실패하면 새로운 위원회를 발족하며, 기존의 수사가 미흡하면 특별수사기구를 요구한다. 정부기관의 실패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목되더라도, 해법을 더 빈틈없고 더 촘촘한 국가기관에서 찾을 뿐이다. 즉,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공권력 바깥에서 문제를 해결할 여지는 좀처럼 부각되지 않는다.
선거 의혹을 둘러싼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관리기관의 설명을 신뢰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검찰과 법원, 언론과 제도권 정치인들조차 의혹을 외면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진실을 밝혀달라는 요청은 다시 그 기관들을 향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해명하고, 경찰·검찰이 수사하며, 법원이 판단하고, 국회가 제도를 개혁하기를 기다린다. 정치권력을 불신한다고 선언하는 동시에, 진실을 조사하고 확정할 궁극적 권능만큼은 여전히 국가가 독점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셈이다.
물론 현행법상 선거의 효력을 판단하거나 재선거를 명령하는 일은 법률에 따른 공식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시민단체가 스스로 선거를 무효로 선언할 수 없고, 투표함을 강제로 열거나 서버를 압수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법적 판정과 사실의 발견은 구별되어야 한다.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당국이 맡는다고 해서, 그 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수집과 검증까지 오직 국가기관이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지식론이 핵심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에서 사회가 활용해야 할 지식이 어느 한 사람이나 한 기관에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현실에서 지식은 불완전하고 때로는 모순된 조각으로 다양한 개인에게 분산되어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통계나 일반법칙으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의 구체적 사정에 관한 지식”이다. 중앙기관이 이와 같은 파편적 지식을 수집한다 하더라도 완전한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며, 결국 현장을 아는 사람들의 지식을 활용할 분권적 질서가 필요하다(Hayek, 1945).
선거에 관한 사실도 단일 기관 안에 완제품처럼 정제된 채 보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선거관리기관은 공식 업무와 내부 절차를 알고 있지만, 그것이 해당 선거를 둘러싼 모든 지식을 포괄하지는 않는다. 참관인이 현장에서 목격한 사건, 장비를 다룬 실무자의 경험, 물품의 납품과 운송 기록, 주변에서 촬영된 영상, 관계자들의 엇갈리는 증언, 문서가 작성되고 수정된 시점은 여러 장소와 개인에게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어느 한 기관도 총체적인 그림을 처음부터 보유하지 않는다.
따라서 선거 의혹에서 물어야 할 것은 “어느 기관이 진실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다. 어떤 절차가 흩어진 지식을 발견·수합하고, 서로 상충하는 자료를 비교·대조하며, 그릇된 추론을 걸러낼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선거관리기관의 자기 해명으로는 부족하다. 의혹을 제기하는 정치집단이 원하는 결론을 반복 확인하는 것도 검증이라고 볼 수 없다. 한쪽은 관료적 자기검증에 갇힐 위험이, 다른 한쪽은 확증편향을 진실처럼 포장할 위험이 있다.
하이에크는 훗날 「Competition as a Discovery Procedure」에서 경쟁의 의미를 처음부터 알려진 정답을 가장 효율적으로 실행하는 데서 구하지 않았다. 모든 사실과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면 경쟁은 필요하지 않다. 경쟁이 필요한 까닭은, 경쟁하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는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는 미리 예측할 수 없으며, 때로는 참가자들의 기대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Hayek, 1968).
하이에크가 선거조사를 직접 논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논리를 적용하면, 선거 의혹 역시 지금처럼 일원화된 기관이 결론을 독점하기보다 서로 독립된 다수의 조사자가 시민사회의 현장에서 경쟁적으로 검증하는 편이 타당하다. 복수의 조사단이 각기 다른 자료와 방법으로 동일한 의혹을 조사하고, 한 팀의 결론을 상대팀이 반박하며, 의혹을 지지하는 자료와 약화하는 자료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경쟁의 목적은 동일한 결론을 여러 번 받아내는 데 있지 않다. 어느 누구도 처음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고, 틀린 주장이 검증 과정에서 탈락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러한 발견 절차의 현실적인 도구 가운데 하나가 사설탐정, 곧 PI가 될 수 있다. PI는 경찰·검찰을 대신하는 주권적 기관이 아니며, 사람을 강제로 소환하거나 자료·전산망에 임의로 접근할 수 없다. 대신 공개된 계약과 법인자료를 조사하고, 영상이 촬영된 장소와 시각을 확인하며, 관계자의 자발적 진술을 다른 기록과 대조할 수 있다. 주장이 사실이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인물·시간·장소·자료를 특정하고, 사실이 아니면 어느 대목에서 추론이 반증되는지 밝힐 수 있다. 막연한 의심을 조사와 반증이 가능한 명제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지만 민간조사기관이 선의나 자원봉사만으로 지속될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과도기에는 일부 조사·감사업무를 복수의 민간기관에 경쟁적으로 개방하고, 동일한 사안에 대한 국가기관과 민간기관의 조사를 병행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정부계약 자체를 최종적인 자유시장 질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이 독점하던 조사서비스에 경쟁자를 진입시키는 이행수단이다. 조사자는 특정한 정치적 결론이 아니라 조사 범위와 업무 수행에 따라 보수를 받고, 정확한 조사로 평판과 후속 계약을 얻으며, 부실한 조사에는 거래기회의 상실과 책임이 따르게 해야 한다. 나아가 조사 비용의 출처와 이해관계, 조사 방법을 공개하고, 자료의 출처와 보관 이력을 기록하여 다른 조사자가 그 결론을 다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장차 전문성과 평판이 축적되면 정당·후보자·언론·시민단체 등에서 들어오는 직접 의뢰도 독립된 민간 수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부정이 있었음을 입증하라”는 조사 의뢰가 아니라 결론의 주문인 것이다.
선거 의혹에는 회계·통계·전산·법률·현장관찰 등 서로 다른 지식이 필요하므로, 어느 한 기관이나 전문가의 판단으로 사건 전체를 설명하기 어렵다.1) 이러한 경쟁적 발견 절차는 PI 하나에 국한될 필요도 없다. 민간 회계·감사기구는 계약·자금흐름을, 민간 시험기관과 대학·연구소의 독립 포렌식팀은 선거장비와 전산체계·통계를, 탐사언론과 공개자료 분석단체는 문서·영상과 인적관계를 검증할 수 있다. 참관인 네트워크와 내부고발자 보호망은 현장과 조직 내부에 흩어진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여기에 개인정보와 비밀투표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원자료를 공개한다면, 서로 독립된 조사자들이 같은 자료를 재분석하고 각자의 결론을 비교할 수 있다. 기관 하나가 진실의 최종 소유자가 되는 대신, 여러 중심이 서로의 결론을 시험하면서 오류를 찾는 다중심적 검증질서가 형성되는 것이다.2)3)
국가기관이나 시민사회 자체가 하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 안에서 정보를 발견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것은 제각기 다른 지식과 경험을 지닌 구체적인 개인들이다.4) 따라서 국가라는 하나의 집단을 민간이라는 다른 집단으로 단순히 대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목표는 국가조사를 단일 민간기관으로 넘기는 것이 아니라, 조사독점을 경쟁으로 바꾸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주의는 정부권력 맹신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국가기관을 격렬히 비난하면서도 모든 문제의 최종 해결을 또 다른 국가기관에 맡기는 태도 역시 국가주의다. 기관의 간판 교체만 외칠 뿐, 궁극적 진실은 당국이 ‘제대로’ 규명해 시민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전제는 그대로다.
국가는 진실을 독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시민사회가 자신이 믿고 싶은 서사를 진실로 선언할 수도 없다. 두 독단 사이에 있어야 할 과정은 서로 다른 조사와 반박이 경쟁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씩 오류가 드러나는 발견의 절차이다. 선거 의혹을 국가에 대한 청원으로부터 시민사회의 조사 과제로 옮기는 순간, 시민은 정부권력의 처분을 기다리는 군중에서 스스로 사실을 발견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자유인으로 나아간다.
* 이 글의 방향과 내용에 관해 귀중한 조언을 해주신 전용덕 교수님과 전계운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남아 있는 오류와 판단의 책임은 전적으로 필자에게 있다.
각주
- 전용덕, 『경제학과 역사학』, p. 256 참조. 저자는 역사적 사건의 해석에서 논리학·수학·자연과학·인간행동학·경제학 등 비역사적 학문의 지식을 먼저 활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 이 문단에서 제시한 민간 검증수단의 유형과 일부 제도적 아이디어는 생성형 AI의 제안을 참고하였으며,
필자가 이를 선별·검토하여 본문의 논지에 맞게 재구성했다. - 실제 사례로는 미국 선거지원위원회(EAC)가 공인한 민간 투표시스템 시험기관 Pro V&V와 SLI Compliance, 워싱턴 D.C. 인터넷투표 시스템을 공개 시험한 미시간대학교 연구팀, 필리핀의 시민참관∙비공식 병행집계기구 PPCRV, 투표지 이미지와 개표기 판독자료를 공개하여 시민사회가 자체적인 집계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미국 아이다호주 Ada County의 Ballot Verifier 등을 들 수 있다.
- 전용덕, 『경제학과 역사학』, p. 292 참조. 저자는 모든 집단은 개인들로 구성되며, 개인의 행동 없이는 그 집단도 실체 있는 것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관점을 설명한다.
참고문헌
F. A. Hayek, “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35, No. 4, 1945.
F. A. Hayek, “Competition as a Discovery Procedure,” 1968, English translation in Quarterly
Journal of Austrian Economics, Vol. 5, No. 3, 2002.전용덕, 『경제학과 역사학』, 한국경제연구원, 2014
썸네일 출처: 연합뉴스 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