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한국경제 [expand title="2025년 미제스 와이어 목차 <펼치기>" swaptitle="2025년 미제스 와이어 목차 <닫기>"][미제스 와이어 1월호] 조선의 개항과 자유, 그리고 문명교체 [미제스 와이어 2월호] 노조의 임금결정과 광주글로벌모터스 [미제스 와이어 3월호] 인간행동학적 측면에서 본 ‘혼돈의 한국’(2): 사상전쟁 [미제스 와이어 4월호] 북한은 전쟁 사회주의 국가이다 [미제스 와이어 5월호]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발생 원인 (1) [미제스 와이어 5월호]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발생 원인(2) [미제스 와이어 6월호] 노동조합과 한국 노동시장 그리고 사상전쟁 [미제스 와이어 7월호] 사상 전쟁과 불환지폐에 의한 소득 불평등 [미제스 와이어 8월호] 최저임금제와 무인 점포의 증대 [미제스 와이어 9월호] 식민사학과 일본의 우익 [미제스 와이어 10월호] 의무 공개 매수제는 매수자를 ‘노예’로 만드는 수단이다 [/expand] * * * 1997년에 시작된 경제위기를 IMF위기 또는 IMF사태,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당시 위기를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모두 틀린다. 아래에서 보겠지만, 그것의 정확한 명칭은 ‘경제위기’이다. 그렇게 된 것은 그들이 1997년에 시작된 경제위기의 궁극적 원인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실제 역사에서 경제위기는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위기 발생 연도를 덧붙여 ‘1997년 경제위기’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특히 IMF는 한국 정부에게 외환을 지원하고 구조조정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제시했다. 그 때문에 IMF가 1997년의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직도 일부 사람들이 당시의 위기의 원인을 모르기도 하지만 위기를 타인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으로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 때문에, 그 때의 위기를 IMF위기 또는 IMF사태로 부르는 것은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과 비교해 잘못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외환 제도는 고정환율제도였는데 불환지폐제에서 고정환율제는 외환의 적자 또는 흑자가 발생하는 것이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위기를 외환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틀린다. 외환의 부족으로 발생한 경제현상은 중간단계의 결과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는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자가 발생하여, 1993년 한 해에만 흑자, 1996년에 238.3억 달러, 1997년에 102.9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도 고정환율제를 고집하면 외환의 부족은 피할 수가 없다. 한국은행은 1997-1998년에 (변형된) 변동환율제를 채택하여 그 이후 흑자를 지속되게 만들었다. 1997년의 위기는 경제위기로서 경기변동의 일부라고 하겠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기변동의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경기변동은 매우 복잡한 과정이기 때문에 짧게 요약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춰 통화량의 공급을 늘리면 경기변동이 일어난다. 경기변동은 붐(boom)과 침체(depression)로 이어지는 과정을 말하는 데 붐에서 침체로 넘어가는 과정에 짧은 위기의 기간이 있다. 그러므로 그 짧은 기간을 경제위기의 기간이라 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그럼에도 침체 기간에도 경제위기는 지속된다는 점에서 경제위기를 넓게 정의하면 침체를 포함해야 한다. 1980년 이후 한국은행의 주요 대출금리는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평균을 내기가 어렵다. 그 이전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은행은 1999년 5월 6일 기준금리(2008년 2월까지는 콜금리라고 함)를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그 기간에도 주요 금리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003년에 4.0%였다가 2004년 11월에 3.25%까지 인하했다. 그 이전에는 대출금리의 종류가 그보다 훨씬 많았을 뿐만 아니라 금리 간 편차도 작지 않았다. 무역금융대부 금리는 1964-1979년에 3.5%에 고정되었고 같은 기간 상업어음재할인 금리는 최저 10.5%에서 최고 28%였다. 이것은 수출 또는 수입을 위한 우대 금리가 매우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무역금융대부 금리가 이렇게 낮아지면서 일부 종합상사는 은행으로부터 무역금융을 받기 위하여 서류를 조작하거나 돌멩이나 모래를 수출하고 진짜 상품을 수출한 것처럼 위장하여 무역금융을 받았던 일도 있었다. 한국은행은 상업어음재할인 금리도 1998년에는 5.0%에서 3.0%로 크게 인하했다. 금리의 이런 인하 추세는 ‘협의통화’(=현금통화+요구불예금 및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MMF)를 크게 늘렸다. 협의통화는 1990년에 44,132십억 원에서 1997년에 128,931십억 원으로 7년만에 약 3.0배 증가했다. 그 통화는 1998년에 121,731십억 원이었는데 2015년에는 708,453십억 원으로 17년만에 5.82배나 증가하였다. 통화의 증가가 모두 그리고 즉각적으로 경기변동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큰 폭의 증가는 거의 대부분은 큰 경기변동을 초래한다. 1997년의 경제위기도 통화공급 증대로 발생한 경기변동의 일부임은 분명하다. 지난 달 26일 열린 ‘대한민국의 건국,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선진화“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홍규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는 “당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로서 ‘회색 코뿔소(눈에 잘 띄지만 간과되는 위험)’가 존재했다”고 지적하고 “대마불사론을 믿고 부채 위험을 무시하는 재벌, 관치에 안주해 대출 위험에 둔감해진 금융권, 생산성 향상엔 관심없는 노조, ‘한국은 괜찮다’는 경제 관료들의 안이한 인식”을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통화공급의 증대가 1997년 경제위기의 원인이기 때문에 그의 분석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그가 제시한 여러 가지 요인들은 붐 기간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그리고 위기에 이은 침체 기간에는 그런 현상이 대부분 제자리를 찾아가기 때문에 그가 경제위기로 기업, 금융감독, 노조의 고질적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한국 경제를 개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도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경제위기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회색 코뿔소라는 있지도 않는-어쩌면 혼자만 아는-이상한 개념을 가져와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는 ‘신기루’를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엉터리 분석이 유명 언론사에 의해 보도되었는가? 그 원인이 무엇이든 무지(無知)로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여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없다. 1997년 전후한 경기변동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이후 일어난 여러 번의 경제위기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 * * 썸네일 출처 : https://www.hyundaenews.com/86291
[미제스 와이어 11월호] 외환위기와 경제위기: 무엇이 정확한가?
조회 801
Tags
댓글을 불러오는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