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설명은 생략하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공산주의 이후 폴란드의 발전 과정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점이 많다. 지난 5~10년 동안, 사회주의를 버리고 시장경제와 유사한 체제로 전환한 결과를 보여주는 사례로 폴란드 경제를 칭송하는 기사들을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 폴란드가 GDP 1조 달러를 달성했다는 헤드라인과 지속적으로 3.5% 이상의 실질 GDP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수치, 심지어 장차 폴란드가 독일을 추월할 것이라는 게시글과 기사들까지도—평소 자유시장 성향으로 알려진 FEE와 같은 기관에서 나온 것들까지 포함해서—분명 접해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오늘날 현대 언론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들은 특정한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 수많은 불편한 사실들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폴란드가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폴란드를 “유럽의 호랑이라거나 장차 유럽의 핵심 경제국들을 추월할 것이라는 서사의 상당 부분은 의심스럽다.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그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첫째, 폴란드의 1인당 GDP는 여전히 포르투갈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노동생산성 또한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EU 재정 지원에 대한 실질적인 의존 문제, 수출 중심 인플레이션 통화체제(export-inflationary monetary regime), 그리고 심각하게 낮은(동아시아 수준의) 출산율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서유럽 국가들에 수렴하거나 이를 추월하는 것은 여전히 실현 가능성이 낮다.

이는 폴란드 경제가 서유럽(특히 독일의) 소비재와 자동차를 하청 생산하고 최종 조립하는 산업구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업구조가 중국이나 다른 비(非)동아시아 국가보다 더 고도화된 산업구조 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보조금,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를 위한 특혜 정책을 통해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데 의존하고 있다. 이는 근로자 보상이 생산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물론 이는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모든 경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과, 독일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온 역사적 추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나타나는 예측 가능한 결과 가운데 하나는 명백하다. 생활비 문제로 인해 인구 대체 수준의 출산(replacement reproduction)이 저해된다는 것이다. 낮은 출산율은 폴란드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폴란드 저출산의 심각성은 분명히 예외적이다. 2025년 기준 폴란드의 합계출산율(TFR)1.1을 기록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의 1.3-1.6보다 훨씬 낮으며 중국, 대한민국, 일본, 대만과 비슷한 수준이다. 서유럽에서는 소득의 40%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하는 사람이 11~13%에 이르는 반면, 폴란드에서는 그 비율이 4.6%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현재처럼 높은 물가가 계속 유지되거나 더 상승할 경우, 이는 낮은 임금 비용이라는 인위적인 상대적 우위를 유지해야 하는 수출 중심의 인플레이션 체제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폴란드 경제는 성장을 이루기 위해” 국민 자신의 소득과 저축에 구조적인 제약을 가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므로, 서유럽 국가들과의 격차가 좁혀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둘째, 폴란드의 실업률 통계는 EU 평균보다 더 양호한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경제활동참가율EU 평균과 대체로 비슷한 수준이지만, 서유럽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150만 명이 넘는 폴란드인을 감안하면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드러난다. 이는 단순한 인재 유출 문제만은 아니다. 폴란드인 상당수는 서유럽의 대도시로 이주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우커마르크(역사적으로 침체를 겪어 온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와 브란덴부르크주 일대), 베스트팔렌, 그리고 영국의 농촌 지역과 같은 낙후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건설업이나 노인 돌봄과 같은 비교적 저숙련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이는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 폴스키 피아트(공산주의 시절의 자동차 제조업체)와 같은 극도로 비효율적인 국영 기업들을 대거 정리하기는 했지만, 노동조합과 관료제의 강력한 법적 권한은 억제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그 자유화 자체가 본질적으로는 케인스주의적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독이 된 의존성

셋째, 그리고 아마도 가장 간과되는 문제는 폴란드의 EU 재정 지원에 대한 의존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EU에는 경제 상황이 양호하거나 평균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회원국들이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회원국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으며, 대표적으로는 결속기금(Cohesion Fund), 공정전환기금(Just Transition Fund), 그리고 농업기금(Agricultural Funds)이다. 이들 기금을 지원받기 위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① 1인당 GDP가 EU평균의 75% 미만이거나 75~100% 구간에 속할 것. ② EU가 요구하는 특정한 정치적 개혁을 수용할 의지가 있을 것. 폴란드는 오랫동안 이들 기금의 최대 수혜국으로, 지금까지 순수혜액 기준 총 1,560억 유로(1,800억 달러)를 지원받았으며, 추가로 760억 유로(870억 달러)를 지원받을 예정이다. 이러한 기금은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농업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굳이 그렇게 부르자면 정실주의다).

문제가 되는 것은 독일이 오랫동안 이 기금들의 최대 분담국이었고, 베를린이 앞으로는 지원을 조건부로 전환하거나 심지어 그 규모를 제한하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경기 변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구조 변화인 것이다. 독일 자체도 이민 문제경기침체, 그리고 자국 동부 지역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 부담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더욱 내향적인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이에 비해 폴란드는 계속해서 이러한 지원을 받고 있으며, 종종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문제가 더욱 구조적인 성격을 띠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이 모든 것의 역사적 배경에 있다.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배상금으로 폴란드가 1조 3천억 유로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들어봤을지 모르지만, 아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또 다른 역사적 사실은 폴란드의 서부와 북부 영토 대부분이 독일의 일부였고, 주민 다수가 폴란드인이 아니라 독일인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 특히 소련과 체코, 폴란드, 그리고 처칠 본인이 1,200만~1,400만 명이 넘는 독일인을 고향에서 집단학살적인 방식으로 추방했기 때문이며(이는 집단학살분류될 수도 있다). 추방 자체를 둘러싼 폴란드의 담론은 수백만 명의 무고한 독일인들에게 자행된 노인과 여성, 어린이에 대한 린치와 강간을 포함한 만행을 “정당한 응징(just punishment)”으로 치부하거나, 노골적으로 정당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이는 당연히 혐오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추방에 대한 기억이 독일 사회의 담론 속에서 다시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EU 기금을 삭감하려는 유인을 훨씬 더 키울 것이다. 특히 전통적인 유럽회의주의(Euroskeptic)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사상 최고 수준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왜 이러한 서사가 존재하는가

한편으로는 누구도 사회주의를 애도해서는 안 된다(빵 배급 줄과 굴라크[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가 존재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또한 폴란드를 순전히 인위적인 경제적 산물로만 치부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폴란드는 온갖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분명 어느 정도의 실질적인 성과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정작 물어야 할 것은 폴란드 경제와 그것을 둘러싼 서사가 과연 얼마나 실체를 갖춘 것인가이다.

우리는 대체로 기억이 짧고,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는 어제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금본위제를 버리고 불환화폐를 제안했다는 이유로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프리츠 마흘루프와 밀턴 프리드먼 등을 향해 "사회주의자 무리(a bunch of socialists)"라고 몰아세웠던 일을 떠올려 보라. 오늘날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불환화폐(fiat currency)가 전체적이든 부분적이든 중앙계획의 또 다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과, 미제스는 금본위제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반면 프리드먼은(특히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이에 반대했으며 두 사람 모두 금본위제 아래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람들은 미제스와 프리드먼을 모두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라는 단일한 범주로 묶어 버린다. “자본주의” 대한민국이 박정희 정권과 이후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대규모 인플레이션 급등과 인플레이션 변동을 겪었으며, 그들의 정책을 “경제개발 5개년 계획(Five-Year Plans)”이라 불렀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현대 역사학계는 이를 언제나 뭉뚱그려 “자본주의라는 용어로 규정한다.

좌파가 자신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자본주의 또는 자본주의의 결과로 규정하는 이유와, 그들이 왜 역사적으로 정직하지 못한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역사적 사례와 근거가 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폴란드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다만 접근 방식은 조금 다르다. 즉, 폴란드 경제를 독일의 경제 기적을 이끌었던 과거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와 거듭 비교하는 경우가 그렇다.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는 오늘날의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매우 자유시장적인 자유화 정책이었다. 그것은 당시의 통화였던 독일 마르크를 미국 달러를 매개로 금에 연동시키고(브레턴우즈 체제), 나치의 중앙계획 기구를 해체함으로써 활력 있고 부유한 중산층과 보쉬, 지멘스, 폭스바겐 같은 세계적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나치의 국민차였던 폭스바겐은 1950년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다. 화폐가 건전할 때 이윤은 지속 가능성의 신호이며, 사람들은 단지 “돈이 있으니까라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소비하거나 투자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능력, 즉 저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의 기업들이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능력을 얻기 위해 실력으로 경쟁해야 했기 때문인데, 바로 이것이 불환화폐 체제에서는 근본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일이다.

낮은 출산율과 각종 의존성, 그리고 승리를 자축하는 서사는 하나의 씁쓸한 현실을 가리고 있다. 그 이윤은 온전히 실질적인 것이 아니며, 상품의 가격은 결국 근로자들 자신이 부담하고, 그 결과 그들은 그저 자녀를 갖는 데 투자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좌우를 막론한 포퓰리즘적 수사는 이를 사람과 가족보다 이윤을 앞세운 결과”라는 식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적어도 이 경우에는) 결국 빵 배급 줄(breadlines)을 만들어냈던 체제로 돌아가자고 요구하거나, 아니면 현재의 문제를 외면하는 서사를 낭만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폴란드와 동아시아, 그리고 수많은 수출주도형 인플레이션 체제는 이러한 특유의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세계 각국이 저마다의 통화를 계속 팽창시키는 한, 이들 또한 왜곡되지 않은 시장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 개인들과 국민을 희생시키면서 인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조치로 대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문: Poland: For Now It's Still a Paper Tiger (게재일: 2026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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