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Hermann Hoppe 한스-헤르만 호페는 살아있는 오스트리아학파 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호페는 멩거, 뵘-바베르크, 미제스, 그리고 라스바드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오스트로-자유주의(Austro-libertarianism)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로서, 칸트(Immanuel Kant)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인간행동학 이론체계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멩거(Carl Menger)에 의해 창시된 오스트리아학파가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을 통해 완전한 선험적-연역적 이론체계로 탈바꿈했다면,—적어도 지금까지는—최종적으로 호페가 미제스의 방법론을 경제학을 넘어 형이상학과 윤리학에도 적용함으로써, 인식론,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을 아우르는, 일종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서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 : #마르크스주의비판 번역 : 한창헌 연구원 * 본 글은 한스 헤르만 호페(Hans-Hermann Hoppe)교수의 <사유재산의 경제학과 윤리학>(The Economics and Ethics of Private Property)의 4장을 발췌한 글입니다. 2019년 9월 미제스 연구소는 호페 교수로부터 해당 책의 온라인 게재 및 출판을 허가받았습니다. * 호페의 마르크스를 비판한 또 다른 글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계급분석이론 마르크스주의 대(對) 오스트리아학파 (1편) 계급분석이론 마르크스주의 대(對) 오스트리아학파 (2편) 제국주의의 역설 한스-헤르만 호페: "마르크스는 본질적으로 옳았다." - 계급투쟁과 착취의 오스트리아학파적 재구성 * * *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인 오해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국가를 평범한 기업으로 여기는 공공선택학파(Public Choice School)와 반대로) 마르크스주의는 국가를 착취적인 것으로 정확하게 해석하기 때문에[note] James Buchanan and Gordon Tullock, The Calculus of Consent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62), p. 19 를 보라[/note]국가 운영 논리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을 가진다. 우선 첫째로, 마르크스주의는 재분배주의적(redistributionist) 국가 정책의 전략적 기능을 인지하고 있다. 착취적인 기업로서 국가는 항상 피지배자 사이의 낮은 계급의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재산과 소득의 재분배—분할해서 지배하라(divide et impera)의 정책—는 대중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고 피착취자들이 단결된 계급의식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국가의 수단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 구조를 민주화하고, 모든 지배자 지위를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며, 모든 사람에게 국가의 인사 및 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국가 권력 그 자체를 재분배하는 것은 위와 같은 착취에 대한 저항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듯이, 국가는 사실 이념적 프로파간다와 신비화에 헌신하는 거대한 시설이다. 착취는 진정한 자유이고, 세금은 진정한 자발적 기부이고, 비계약적 관계는 진정한 "개념적" 계약 관계이고,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오직 스스로를 지배하고, 국가가 없다면 법과 보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갈 것이라는 등 국가는 수많은 프로파간다를 생산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경제적 착취의 기본 토대를 합법화하기 위해 고안된 이념적 상부구조의 일부분이다.[note] Hans-Hermann Hoppe, Eigentum, Anarchie, und Staat (Opladen: Westdeutscher Verlag, 1987); idem, A Theory of Socialism and Capitalism 를 보라[/note] 마지막으로, 국가와 기업, 특히 은행업 엘리트들 사이의 긴밀한 연합관계를 인식했다는 점에서—비록 이에 대한 설명은 틀렸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정확하다. 그 이유는 부르주아 기득권층이 국가를 사유재산권과 계약론(contractualism)의 보증자로 여기고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와 반대로, 기득권층은 국가를 사유재산의 정반대로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국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다. 기업이 더 크게 성공할수록 정부에게 착취를 당할 잠재적 위험이 커지지만, 정부의 특별한 보호 아래로 들어가서 자본주의 경쟁이라는 부담에서 면제될 수 있다면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득 역시 더 커진다. 이것이 기업 기득권층이 국가와 국가의 침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다. 지배 엘리트는 결국 기업 기득권층이 가진 재정적 권력 때문에 그들과의 긴밀한 협력에 관심을 가진다. 특히 은행업 엘리트는 관심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착취적 기업로서 국가는 자연스럽게 화폐 위조에 대한 완전한 자율권을 원하기 때문이다. 은행업 엘리트들에게 화폐 위조 음모에 동참하도록 제안하고 부분지불준비금제도 체제 아래에서 국가의 위조 지폐를 생산할 수 있도록 허락함으로써 국가는 손쉽게 목표를 달성하고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국가 독점 화폐와 카르텔화된 은행업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그리고 은행업 체계와의 직접적인 화폐 위조 관계에 더해 은행 주요 고객층을 확장하면서 사실상 지배계급은 국가 기구를 뛰어넘어 시민 사회의 신경 중심부까지 확대된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묘사하곤 하는 은행업, 기업 엘리트 및 국가의 협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note] Hans-Hermann Hoppe, “Banking, Nation States and International Politics,” Review of Austrian Economics 4 (1990); supra chap. 3; Rothbard, The Mystery of Banking, chaps. 15–16 를 보라[/note] 지배계급 내부의 경쟁과 서로 다른 지배계급 사이의 경쟁은 집결을 증가시키는 경향을 가져온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올바르다. 그러나 잘못된 착취 이론이 다시금 이러한 경향의 원인을 잘못된 장소에서 찾도록 이끈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경향을 자본주의 경쟁에 내재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람들이 완벽한 자본주의에 참여하는 한, 경쟁은 제로썸 상호작용의 형태가 아니다. 홈스테더, 생산자, 저축자 및 계약자는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이익을 얻지 않는다. 그들의 이익은 (모든 계약적 거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물리적 소유물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거나, 실질적인 상호 이익을 암시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절대적인 부의 증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체제 아래에서 상대적인 집결에 대한 체계적인 경향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note]특히 Rothbard, Man, Economy, and State, chap. 10, esp. the section “The Problem of One Big Cartel”; also Mises, Socialism, chaps. 22–26 를 참조하라.[/note]대신에, 제로썸 상호작용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경쟁하는 지배자들 사이의 관계로 특징지어진다. 비생산적이고 비계약적인 재산 취득으로 정의되는 착취는 전용할 것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착취 사업에 자유경쟁이 존재한다면, 분명 몰수할 대상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착취는 일부 주어진 영토와 인구에 대한 독점을 요구한다. 그리고 착취자들 사이의 경쟁은 그 본성에 의해 제거되며, 착취적 기업은 상대적 집결 경향뿐만 아니라 각 기업 내부의 중앙집중화 경향을 드러낸다. 자본주의적 기업이 아닌 국가의 발전은 이러한 경향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오늘날에는 지난 세기보다 훨씬 더 적은 수의 국가가 훨씬 더 넓은 영토를 착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각 국가 기구 내부에는 지방 행정 구역을 희생하여 중앙정부의 권력을 증가시키려는 지속적인 경향이 있어 왔다. 그러나 국가 기구 외부의 상대적인 집결 경향 또한 동일한 이유로 명백해진다. 앞서 분명히 밝혔듯이, 이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어떤 특성 때문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국가-은행업-기업의 엽합과 특히 중앙은행 체계의 설립을 통해 시민 사회의 한가운데까지 그들의 지배를 확장했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 권력의 집결과 중앙집중화가 일어난다면, 은행업과 산업의 상대적인 집결과 카르텔화라는 병행 과정을 수반하는 것이 당연하다. 국가 권력의 증가와 함께 은행업 및 기업 기득권층의 권력이 증가하면서 이들은 비생산적 그리고/혹은 비계약적 몰수의 수단을 통해 경제적 경제적 경쟁자에게 불이익을 가해 압박하거나 제거해 버린다. 중앙집중화는 경제 생활의 "국가화(state-ization)"을 반영하는 것이다. [note] Gabriel Kolko, The Triumph of Conservatism (Chicago: Free Press, 1967); James Weinstein, The Corporate Ideal in the Liberal State (Boston: Beacon Press, 1968); Ronald Radosh and Murray N. Rothbard, eds., A New History of Leviathan (New York: Dutton, 1972); Leonard Liggio and James J. Martin, eds., Watershed of Empire (Colorado Springs, Colo.: Ralph Myles, 1976) 를 참조하라.[/note] 국가권력을 확장하고 경쟁하는 착취 시설을 제거하기 위한 주요 수단은 전쟁과 군사적 지배이다. 국가간 경쟁은 전쟁과 제국주의 경향을 암시한다. 착취 시설로서 국가 간 이익은 선천적으로 적대적이다. 게다가, 각 국가는—내부적으로—과세 및 절대적인 화폐 위조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배계급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서 그들의 전쟁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 위험한 모험에 뛰어드는 데 드는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이 다른 사람에게 비용을 지불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더 거대한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되고, 그렇게 더 행복해지는 자연스러운 경향이 있을 것이다.[note] 국가와 전쟁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Ekkehart Krippendorff, Staat Und Krieg (Frankfurt/M.: Suhrkamp, 1985); Charles Tilly, “War Making and State Making as Organized Crime,” in Peter Evans et al., eds., Bringing the State Back I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also Robert Higgs, Crisis and Leviatha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를 보라. [/note] 그리고 마찬가지로, 은행업 및 기업 기득권층이 보통 군사력과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꾸준한 지적에 대해서도 직관적이지만 다시 한번 완전히 비마르크스주의적인 설명이 존재한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의 확장이 착취를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의 보호와 특권을 받는 기업의 확장이 그러한 보호를 외국으로 확대해야 하고, 내부적 경쟁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혹은 그 이상으로 비계약적이고 비생산적인 재산 취득을 통해 외국의 경쟁자들을 방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국주의가 다른 국가에 대한 동맹국의 군사적 지배로 이어질 것을 약속한다면, 그들은 제국주의를 지지한다. 그렇게 된다면, 군사력의 관점에서 볼 때, 통화 제국주의(monetary imperialism)라고 부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배국가는 국제적으로 통합된 인플레이션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그 우월한 권력을 사용할 것이다. 지배국가의 중앙은행은 화폐 위조 과정의 속도를 설정할 것이고, 피지배국가는 지배국가의 통화를 비축통화로 사용하고 그 위에서 인프레이션을 일으키도록 명령받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배국가와 함께 위조 지불준비 통화의 최초 수령자로서 지배국과 연합된 은행업 및 기업 기득권층은 외국의 재산 소유자와 소득 생산자를 아무런 비용도 없이 착취할 수 있다. 이렇게 국가 및 엘리트 위에 놓인 외국 및 외국 엘리트라는 이중착취구조가 피지배 영토의 피착취계급에게 부과되고, 지배국가에 대한 경제적 의존과 상대적인 경기침체가 장기화된다. 이것이야말로 미국과 미국 달러의 지위를 특징지으며, 미국의 경제적 착취와 달러 제국주의라는 정확한 혐의를 낳는, 매우 비자본주의적인(uncapitalist)상황이 아니겠는가? [note] 군사 및 통화 제국주의 이론의 보다 정교한 설명에 관하여 Hoppe, Banking, Nation States and International Politics (supra chap. 3) 를 보라.[/note] 마지막으로, 착취권력이 집결하고 중앙집중화가 심화될수록 경기침제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그들의 궁극적인 종말과 함께 전례 없는 경제적 번영을 낳을 수 있는 계급 없는 사회의 구축을 위한 객관적인 조건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이는 어떠한 역사적 법칙의 결과가 아니다. 사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불변의 역사적 법칙 같은 것은 없다.[note] 특히 Ludwig von Mises, Theory and History (Auburn, Ala.: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85), esp. part 2 를 참조하라.[/note]또한 이는 마르크스의 생각처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증가함에 따라 (즉, 가변 자본(variable capital)에 대비한 불변 자본(constant capital)의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나타나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결과도 아니다. 노동가치론이 구제불가능할 정도로 거짓이듯이, 노동가치론에 기반을 둔 이윤율의 저하 경향 법칙도 마찬가지로 거짓이다 가치, 이자 및 이윤의 원천은 노동의 지출이 아닌 행동, 즉 시간선호와 불확실성(불완전한 지식)에 의해 제약을 받는 행위자의 목표 추구를 위한 희소 수단의 사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변화가 이자 및 이윤의 변화와 체계적인 관계를 가진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 대신에, 더 높은 수준의 계급의식(즉, 지배계급 타도를 위한 주관적인 조건)의 발전을 자극하는 위기의 가능성은 증가한다. 왜냐하면 —마르크스가 즐겨 사용하던 용어 중 하나로 표현하자면— 앞서 이미 언급했던 착취의 변증법 때문이다. 착취는 부의 형성을 파괴한다. 따라서 착취적 기업들(국가들)의 경쟁에서는 덜 착취적이거나 더 자유로운 기업이 더 풍부한 자원을 장악하기 때문에, 더 착취적인 기업들을 능가하는 경향이 있다. 제국주의 과정은 처음에는 통제 아래에 있는 사회에 상대적으로 해방되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상대적으로 더 자본주의적인 사회 모델이 상대적으로 덜 자본주의적인(더 착취적인) 사회로 수출되고 생산력의 발전이 촉진된다. 경제 통합이 더욱 강화되고, 분업이 확대되며, 진정한 세계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구통계가 상승하고, 경제 전망은 전례 없는 높이에 이른다.[note]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특히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에서,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자본주의 성격을 옹호했으며, 그 전례 없는 성취에 찬사를 보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선언서의 구절을 검토하며 요제프 A. 슘페터(Joseph A. Schumpeter)가 결론 내리기를 다시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특히 부르주아 문명에 대한 어떤 현대의 옹호자도 이와 결줄만한 글을 저술한 적이 없으며, 상인 계급(business class)를 대신하여 그 업적이 무엇이고 그것이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이만큼 심오하고 포괄적인 이해를 간결하게 구성한 적이 없다. (“The Communist Manifesto in Sociology and Economics,” in idem, Essays of Joseph A. Schumpeter, ed. Richard Clemence [Port Washington, N.Y.: Kennikat Press, 1951], p. 293)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고려할 때,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영국의 인도 정복을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발전이라고 옹호하기까지 했다. Marx’s contributions to the New York Daily Tribune, of June 25, 1853, July 11, 1853, August 8, 1853 (Marx and Engels, Werke [East Berlin: Dietz, 1960], vol. 9) 를 보라. 제국주의에 대해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현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Bill Warren, Imperialism: Pioneer of Capitalism (London: New Left Books, 1981) 를 보라.[/note]그러나 제국주의적 팽창주의 과정에서 착취적인 지배가 계속되고 국가간 경쟁이 감소 혹은 제거됨에 따라서, 지배국가의 내부적 착취와 몰수에 대한 외부제약은 점차 사려져 간다. 지배계급이 세계지배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내부적 착취, 조세 및 규제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전세계적으로— 높았던 기대들이 좌절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기대와 기대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경제적 현실은 혁명적 잠재력의 출현을 위한 고전적인 상황이다.[note] 혁명이론에 관하여, 특히 Charles Tilly, From Mobilization to Revolution (Reading, Mass.: Addison-Wesley, 1978); idem, As Sociology Meets History (New York: Academic Press, 1981) 를 참조하라.[/note]떠오르는 위기에 대한 이념적 해결책의 절실한 요구가나타나고, 이와 함께—그러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과 거리가 먼—국가의 지배, 조세 및 규제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바로 그 문제를 실질적으로 구성한다는 사실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인식이 발생한다. 이러한 경기침체, 경제 위기 및 이념적 환멸의 상황 속에서[note] 영구적인 경기침체와 보수주의 및 사회민주주의 (즉, 미국의 용어로 "리버럴리즘(liberalism)")의 합법적인 권력의 고갈에서 탄생한 "새로운 이념적 방향상실"로 특징지어지는 "후기 자본주의"로서의 현 시대에 대한 신마르크스주의 평가로 Jürgen Habermas, Die Neue Unübersichtlichkeit (Frankfurt/M.: Suhrkamp, 1985); also idem, Legitimation Crisis (Boston: Beacon Press, 1975); C. Offe, Strukurprobleme des kapitalistischen Staates (Frankfurt/M.: Suhrkamp, 1972) 를 보라.[/note], 만약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이라는 경제적 대응물과 결합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리버테리언(libertarian) 철학의 형태로 확실한 해결책이 제시된다면, 그리고 이 이념이 실천적 운동을 통해 전파된다면, 혁명적 잠재력에서 실천주의로 불을 붙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긍정적이고 유망해진다. 반국가주의자들(antistatist)의 압력은 지배계급과 그들의 착취 수단으로서 국가의 권력을 해체하려는 피할 수 없는 경향을 가져올 것이다.[note] 후기 자본주의의 위기-특징에 대한 오스트리안-리버테리언의 평가와 혁명적 리버테리언 계급 의식 출현의 전망에 관하여, Rothbard, “Left and Right”; idem, For a New Liberty, chap. 15; idem, The Ethics of Liberty (Atlantic Highlands, N.J.: Humanities Press, 1982), part V 를 보라.[/note] 그러나, 만약 이것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일어나는 한, 이는 마르크스주의 모델과는 반대로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사회적 소유는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사멸한다"라는 사상과 양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생산수단이 집단적으로 소유되고, 이러한 생산수단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모든 사람의 생각이 (마치 기적처럼) 우연히 일치하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현실적으로 가정한다면, 사회적으로 소유된 생산요소들은 지속적인 국가의 행동, 즉 한 사람의 의지를 동의하지 않는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는 기관을 필요로 한다. 대신에, 국가의 사멸, 그리고 그로 인한 착취의 종말, 전례 없는 경제적 번영과 자유의 시작은, 사법(private law) 이외에는 그 무엇에도 규제되지 않는 순수한 사유재산 사회의 설립을 의미한다. * * * 썸네일 출처 : https://www.economicrockstar.com/peter-boett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