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인물평가
원문:  [Rothbard at 100: A Tribute and Assessment] (게재일 : 2026년 3월 2일) 
번역: 김선우
-『Rothbard at 100: 헌사와 평가』에서 발췌, 스테판 킨셀라·한스-헤르만 호페 편 (휴스턴: Papinian Press·Property and Freedom Society, 2026) - 
---

오늘날까지도 라스바드는 20세기 최대의 거인들 중 하나로서 그에게 마땅한 대중적 인정을 받지 못했다. 약간의 추측이 필요하지만 이 현상을 그럴듯하게 또는 어찌보면 명백하게 설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라스바드는 아나키스트이고, 다만 노암 촘스키처럼 공유재산과 위계질서 없는 사회질서를 꿈꾸는 좌파(사회주의적 또는 생디칼리즘적) 아나키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라스바드는 강경한 우파 아나키스트로서, 무정부적 자본주의, 즉 사유재산과 그 최초취득[homesteading]이나 자발적 계약에 기반한 사적 법률[私法] 사회, 그리고 노동의 분업과 자연적 사회 위계질서들이 갖추어진 사회를 지향한다.[1] 

분명히, 얼핏 보기에도 이것은 그를 거의 모두에 의해 공유되는 현대의 한 세속적 종교의 정반대에 위치하게 하는데, 그 종교란 바로 국가주의/정부주의[Statism, Etatismus], 즉 ‘무력의 영토적 독점자’로서의 국가기능의 필요성과 긍정성에 대한 믿음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부가 없다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교육, 공립학교와 국립대학 따위가 없다. 특히 교육과 언론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요즘의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무리는 이것이 없이 어디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겠는가? 다수는 찾을 수 없을 것이고 찾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며 따라서, 다수의 지식인들은 그런 생각에 강력히 반대할 것이다.

업튼 싱클레어가 말했듯, “누군가의 월급이 무언가를 이해하지 않는 것에 달려 있을 때, 그가 그것을 이해하게 하는 것은 어렵다.” 더 나아가, 국가권력이 없이는 법정화폐 발행을 독점하는 중앙은행들도 없을 것이다. 헌데 중앙은행들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과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같은 기구는 오늘날 경제학자들의 최대 고용주들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경제학자들은 라스바드주의적 사상에 극도로 적대적이게 된다. 또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와 중앙은행이 없이는 무장한 민병대는 존재할 수 있다만 상비군은 없을 것이고 국제 갈등과 전쟁을 부추기는 군산 복합체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거대 산업 세력과 모든 국수주의자, 전쟁광들과 제국주의자들은 라스바드가 구상한 무정부와 사적 법률사회라는 개념에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다.

이제 라스바드가 전쟁, 군산복합체, 전쟁국가와 미국의 개입주의적인 외교정책에 엄격하고 확고한 반대 입장을 취했던 점과 관련지어, 그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와 학계에서의 인정이 시원찮았던 궁극적인(그러나 가장 덜 회자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유대인은 미국 인구의 2-3% 미만을 차지하지만, 거기에 있는 모두가 알고도 말하지 않도록 권장되듯이, 미국의 학계와 주류 언론(그리고 보다시피 더 많은 것들)은 (대체로 비종교적인) 유대인에 의해 지배받는다. 라스바드 역시 비종교적인 유대인이었다. 따라서 그의 관점과 무관하게, 즉 그가 무정부주의자였든, 그가 “인종차별주의”(그는 리처드 헤른스타인과 찰스 머레이의 ‘벨 커브’ 와 필립 러쉬턴의 ‘인종, 진화, 행동’ 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2]자였든 뭐였든 간에 그의 재능을 갖춘 사람은 그의 동족 유대인들의 막대한 영향력과 놀라운 (동시에 언급 불가능한) 집단적 연대의 힘으로 학계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고 또 올라야 했다.

이것이 발생하지 않고 되려 그가 많은 “상류” 사회[“polite” society]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persona non grata]’이 된 것에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두 가지 원인이 있다. 라스바드의 유대교에 대한 입장과 이스라엘에 대한 견해가 그것이다. 비록 라스바드는 불가지론자였지만, 라스바드는 종교의 역사와 사회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유대교를, 구체적으로는 탈무드에서 표현된 랍비식 유대교를, 원시적 부족종교로 보았다. 현대의 유대교 옹호론자들과 변증론자들과는 확연히 대조적으로, 그리고 이스라엘 샤하크의 수정주의적인 ‘유대인의 역사, 유대인의 종교: 3천 년의 무게’[3]와 같이, 라스바드는 유대교를 배타적이고 민족중심주의적이며 우월주의적인 교리로 보았는데, 유대교에 따르면 유대인의 생명은 이방인 또는 고이[goy, 비유대인에 대한 멸칭인 고임goyim의 줄임말: 역주]의 그것보다 그 자체로 우월하고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탈무드에서 예수는 극도로 부정적이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인데, 간음한 여인에게서 태어난 근본 없는 사생아, 흑마법사, 그리고 자신의 배설물과 함께 삶아지는 고통을 선고받을 이단자라는 묘사 따위가 그것이다. 따라서, 라스바드에게는, 오늘날 마치 주문을 외듯 “유대-기독교”(Judeo-Christianity)[4]라는 것을 서구와 소위 서구의 가치의 근본인 것인 양 떠들어 대는 것은 순 헛소리이며, 역사의 근본적인 왜곡이고, 무지의 징표이다.

사실로 말할 것 같으면, 탈무드에 묘사된 기독교에 대한 공개적인 적대감과는 대조적으로, 주로 공격받는 코란이 오히려 예수님과 동정녀 마리아에 대해 우호적이다. (참고로, 라스바드에게 반드시 골라야만 한다면 어떤 종교를 믿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보편주의적인 종교인 가톨릭 기독교를 믿겠다고 답하곤 했다.) 이스라엘에 관한 라스바드의 관점도 역시 통념(실은 대중 세뇌)에 반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국가권력, 그리고 땅에 관한 사유재산권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모든 토지는 이스라엘 토지공사 Israel Land Authority나 유대민족기금에 의해 점유된다.)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오늘날 흔히 보는 사례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토착민 사회로부터 내생적으로 자라난 국가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외래 침략자들과 점령자들의 토착민 사회에 대한 몰수, 축출과 탈취, 그리고 살인이라는 폭력적인 외세 침략의 결과물이었다. 영국과 미국, 그리고 전 세계 유대인, 특히 시온주의자들의 선동에 힘입어, 전 세계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고, 아랍인이 다수이던 원주민을 테러리스트식 수단으로 몰아내며 1948년에 유대 국가를 세웠다.

더욱이 유대 국가로서 이스라엘은, 앞서 언급한 유대인 우월성 논리에 따라 처음부터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체제를 채택하여 지금까지도 유지하는데, 이 체제 하에서 비유대인은 2등 시민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다. 이스라엘은 또한 처음부터 오늘날까지 공격적이고 팽창주의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면서, 자신들 말로는 ‘열등한’ 이웃 국가들을 희생시켜 왔다. 이를 통해 고대의 넓은 영토와 그 영광을 복원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이것에 대한 변명으로 주어진, 독일과 동유럽에서의 유대인 학살설을 라스바드는 기만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 이유로 첫째는, 현재 이스라엘에 모인 유대인들 모두가 그 피해자일 리는 만무한데다가, 유대인의 침략과 점령으로 고통받아야 했던 팔레스타인의 원주민들이 다른 곳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대한 과거의 범죄들과 관련이 있을 리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결백했고 따라서 그들에게 어떤 배상도 해야 할 책임이 없었다.

개별적으로 볼 때 이 두 주장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주류의 견해와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논란이 될 만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라스바드를 기득권 사회에서 불청객으로 만들고 스캔들을 유발한 것은 이 두 주장을 동시에 하고는 미국의 외교정책이 어빙 크리스톨, 노먼 포드호레츠 같은 소위 신보수주의자 또는 “네오콘”들의 영향력 아래 점점 더 기울고 있다고 지적한 데에 있었다. 다수가 유대인이고, 60년대의 소위 “민권”(“Civil Rights”) 운동과 입법의 폭력적인 결과에 반발하여 “보수”로 전향한 좌파(특히 트로츠키주의 분파) 출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한 네오콘들은 옛 전통적인 미국 우파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대변했다.

라스바드의 지적인 친정이었던 구(舊)우파는, 대내적으로는 탈중앙화를 지지했고, 대외적으로는 엄격하게 불간섭주의적인 외교정책을 옹호했으며 다른 어떤 외세개입이나 동맹도 반대했다. 이와 정반대로, 이후에 기존의 구우파를 전복하고 미국의 외교정책을 장악하게 된 네오콘들은, 민주당 정권 하에서든 공화당 정권 하에서든, 대내적으로 강력하고 중앙화된 복지국가를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사력에 기반하며 제국주의적인 야망으로 촉발된 간섭주의적 외교정책에 유독 지지를 보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국가’인 미국이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경제, 군사적으로 지배적인 국가권력으로 거듭나고 자리잡아야 했다. 그리고 이런 네오콘들의 계획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그 무엇보다 이스라엘이었다.

네오콘은 본질적으로 시온주의자와 시온주의를 의미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최고 전략·도덕적 동맹으로 여겨졌다. 그들에게 있어 이스라엘은 적대적이고 낙후되고 미개한 아랍 및 모슬렘 이웃 국가들로 둘러싸인 근동과 중동에서 서구 문명의 유일한 보루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무엇을 했든 그리고 무엇을 하든, 그것은 전능한 미국의 무조건적 지지를 받아 마땅했다. 이스라엘은 매년 수십억 달러의 미국 군사원조를 받아왔고 지금도 받고 있으며, 미국의 정보 기관 및 서비스로부터 상상 이상으로 긴밀한 협력과 지원을 누리고 있다. 이집트가 되었든, 요르단이든, 레바논이든, 시리아이든, 이라크이든, 리비아이든, 이란이든 예멘이었든, 이스라엘의 팽창주의적이고 우월주의적인 야망 앞을 가로막았거나 가로막는 것은, 또 이스라엘의 이스라엘의 적이거나 적이었던 국가는 동시에 미국의 적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미국의 지속적인 근동 및 중동 문제 개입과 지원이 요구된다.

라스바드는 네오콘과 미국의 개입주의 외교정책 전반의 맹렬한 비판자였다. 그것은 비도덕적이었고, 경제적인 낭비였으며, 평화가 아니라 국제 갈등과 긴장의 끊임없는 단초였다. 하지만 라스바드는 그 중에서도 네오콘들의 시온주의적이고 “이스라엘 우선주의”적인 정책들에 유독 비판적이었다. 왜냐하면 네오콘들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그리고 실제로 오늘날 상당히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미국의 ‘국익’이 이스라엘의 그것에 종속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 모든 외교정책 결정에 있어서, 미국은 이스라엘에 물어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라스바드는 이러한 상황을 그가 즐겨 쓰던 표현을 빌리자면 “극악무도하다[monstrous]”고 보았다.

이스라엘의 명시적이고 배타적인 유대 정부로서의 본질을 고려하면, 라스바드가 예측하기를 근동과 중동은 화약통처럼 끊임없는 전쟁과 분쟁으로 얼룩진 영구적인 위험지대가 될 것이었고, 한때 위대했던 미국은 점진(進)적으로(혹은 되려 퇴(退)보적으로) 세계 최대의 전쟁기계(War Machine)이자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었다. 물론 라스바드의 이 예언은 적중했으며, 이는 20년 전 그의 죽음 당시보다 지금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미국 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 (AIPAC), 미국 유대인 위원회 (AJC), 반명예훼손연맹 (ADL)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 단체인 유대인 로비에게 있어 라스바드의 비판과 미국이 이스라엘로부터 철수하고 이스라엘과 절연할 것에 대한 그의 요구는 “반유대주의”라는 죽을죄이자 궁극적인 배신의 요건을 성립하게 하였다.

그를 완전히 침묵시킬 수 없다면, 그는 무시당하고 폄하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렇다면 라스바드가 누려 마땅했던 지적 명성을 짓밟고 박탈한 자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 바로 네오콘들과 유대인 로비이다.

각주

 1: 호페의 “현실적 자유주의” 참고. 촘스키와 라스바드의 다른 대우에 대한 가설에 대해서는 호세 알베르토 니노의 “노암 촘스키는 어떻게 기득권의 최애 과격분자가 되었는가” 참고. 비슷하게, 학계의 라스바드에 대한 개탄스러운 대우와 대비해 노직의 자유주의와 그의 “방법론적으로 진심을 다하지 않는” “겉치레의 현란”이 어떻게 “주류 학계에게 존경받을 만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논하는 것에 대해서는 호페의 자유의 윤리(라스바드 저, 전용덕 , 김이석 , 이승모 역, 2016) 서문 참고.

2: 머레이 N. 라스바드, “인종! 머레이의 그 책(1994년 12월),” 억누를 수 없는 라스바드: 라스바드-락웰 보고서 에세이 (자유주의 연구 센터, 2000) 

3: 이스라엘 샤하크, 유대인의 역사, 유대인의 종교: 3천 년의 무게, 신판 (플루토 프레스, 2008 [1994]; pdf ; pdf2 ) 4: 역주: 유대교와 기독교를 결합하여 연관짓는 단어이며, 현대 유대교와 이스라엘을 기독교 문명의 ‘뿌리’라 주장하며 이스라엘 정부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네오콘에 의해 쓰인다. 하지만 현대 유대교는 대부분 기독교와 구약 일부를 공유하는 토라만이 아니라 기독교에 적대적인 탈무드를 따르는 랍비식 유대교이고, 이 탈무드는 예수 핍박 후 300-500년이 지나고서야 쓰였다는 점에서 비판받는 용어이다.



썸네일 출처: mises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