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인물평가
원문: [Rothbard at 100: A Tribute and Assessment] (게재일 : 2026년 3월 2일)
번역: 김선우
-『Rothbard at 100: 헌사와 평가』에서 발췌, 스테판 킨셀라·한스-헤르만 호페 편 (휴스턴: Papinian Press·Property and Freedom Society, 2026) -


 한스 헤르만 호페 [1](굴친과 내가 2006년 5월에 카리아 프린세스 호텔에서 ‘재산과 자유협회(Property and Freedom Society, 이하 PFS)’의 첫 회동을 열었을 때, 조직적·실질적 질문들이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지금의 PFS와 그 연례 행사는 수년간의 실험과 학습을 통해 정의되고 다듬어진 결과물이다.[2] 지난 20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PFS는 오늘날 “오스트로-리버테리어니즘”으로 널리 알려진, 20세기에 라스바드로 대표되는 이들에 의해 개발되고 대변된 사회철학에 대한 신념을 굳세게 지켜왔다. 후속되는 챕터[Coming of Age with Murray: 역주]에서 필자는 1985년부터 1995년까지 뉴욕시와 라스베이거스에서 라스바드의 생애 마지막 십 년 동안 그와 가졌던 인연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라스바드로부터 ‘비타협적이고 학제적인 지적 극단주의’, ‘진실과 정의, 미(美)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는 추구’라는 PFS의 정신이자 트레이드마크를 손수 배웠다고 자부한다.

2026년 3월 2일 오늘은 라스바드의 100번째 생일이다. PFS의 수호성인(守護聖人) 중 한 분인 그의 위치를 고려하여 그의 전(前) 제자들과 동기, 그리고 그의 저작에 정통한 PFS의 회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지은 작은 책으로나마 그와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우리는 적절하고도 마땅한 일이라고 판단하였다. 후속되는 챕터에서 필자는 라스바드를 가장 위대한 사회 이론가로 격상한다. ‘명예 졸부’와 ‘15분 연예인’이 넘치는 현 시대에 이 주장은 해명이 조금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그 해명은 다만 쉽다. 라스바드를 경제학자로서만 보면, 그를 뛰어넘는 이가 있다면 그의 스승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단 한 분 계시기는 한다. 하지만 라스바드는 그저 ‘경제학자인 경제학자’가 아니다. 그의 마땅한 위치를 현재 차지한 그의 동시대 경쟁자들과 풋내기들과는 확연히 대조적으로, 라스바드의 방대한 저작은 사회과학 전체의 영역을 아우른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정치철학가 중 한 사람이었으며, 심지어 인식론의 영역까지도 다루었다.

사회학자로서 그는 가에타노 모스카, 빌프레도 파레토, 로베르트 미헬스 전통의 권력 지배층 연구와 분석에 크게 기여하였다. 역사학자로서, 라스바드는 식민지 시대 미국뿐만 아니라 미 경제와 금융사에 대한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사상사(history of economic thought)에 대한 그의 저서 두 권과 안타깝게도 그가 끝내지 못한 마지막 제3권[3]을 통해 라스바드는 사상사, 즉, 이데엔게쉬히테 (Ideengeschichte) 의 대가로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보편사(universal history)의 거인으로 등극했다. 마지막으로, 심지어는 말인데, 라스바드는 이것을 모두 통합하고 체계화할 수 있었다. 그의 방대한 학제적 연구 활동을 권력 대 시장, 약탈 대 생산, 침략과 강제 대 자유의 영속적인 갈등과 투쟁으로서의 인간 역사라는 대서사 안에 담아내었다.

자연스럽게도,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논평을 내린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꼬투리 지식인’들의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꼬투리 지식인이란 누군가가 한 주장이나 논평 한 마디에 집착하고 심지어는 ‘분노’하기까지 하며 그것 하나만으로 그 사람이 말하거나 행한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자들을 말한다. 라스바드에게도 그런 찌질이들이 있었는데, 그의 방대한 지적 외브르(oeuvre)에 대해 정통하기는커녕 눈곱만큼도 아는 것이 없으면서, 또 사실 높은 확률로 시도해도 이해할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그를 비난한 이들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라스바드에게는 동지와 팬들, 즉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오스트로 리버테리언 사상 체계를 그의 발자취를 따라 보존하고, 대변하며, 대중화하고, 다듬거나 개선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독자들, 학생들과 학자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 중 아주 작은 표본을 선사한다. 물론, 라스바드에 대한 진중한 비판들도 있었다.

이 책에 기여한 이들로부터도 말이다. 예컨대 그가 존경한 그의 스승 미제스는 그의 고전적 자유주의 “최소” 국가모델을 라스바드의 무정부주의에 맞서 방어했다. 라스바드의 (그리고 미제스의) 순수 시간선호 기반 이자 이론은 면밀한 비판적 검증을 받았으며, 그의 계약 이론과 지적 재산권 및 저작권에 대한 입장 일부도 마찬가지였다. 또 그의 낙태와 아동의 권리에 대한 입장은 늘 논란거리였다. 몇몇은 그가 아담 스미스에 과하게 비판적이라고 여겼다. 필자 역시 라스바드가 봉건 중세시대를 그의 민주제에 대한 온건한 비판에 비해 과하게 부정적으로 다룬다고 보고 비판한 사실이 있다.[4] 하지만 이러한 비판들은, 미제스의 그것까지도, 모두 본질적으로 우호적인 것이었다. 그 중 어느 것도 라스바드의 위대함을 가리거나 그의 범상한 지적 위상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품지는 않았다.

각주

1: 굴친 임레 호페와 더불어 재산자유협회(PFS)의 창립자인 한스-헤르만 호페는 라스베이거스 대학교 (UNLV)의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며, 루트비히 폰 미제스 연구소의 특별 선임 연구원이자 재산자유협회의 창립자 겸 회장이고, ‘자유주의 연구 저널’ (Journal of Libertarian Studies)의 전 편집자였다. 그는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는데, 일평생 자유의 가치를 방어해온 이유로 수상한, 개리 G. 슐라바움 상(2006) [Gary G. Schlarbaum Award], 머레이 라스바드 자유의 메달(2015) [Murray N. Rothbard Medal of Freedom], 카미노스 데 라 리베르타드 ‘자유를 위한 삶’ 상(2024) [Caminos de la Libertad “A Life for Freedom” Award] 등이 있다.

2: PFS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서는 다음 자료들을 참고할 수 있다: 재산과 자유 사회 공식 페이지의 “역사와 원칙”, “보도 및 외부 자료” 페이지, 호페의 저서 The Great Fiction (2021 개정판), “My Life on the Right”, PFS 연례회 강연들 (2009, 2010, 2015), PFS의 과거와 현재를 논하는 굴친&호페 팟캐스트 및 영상(2015), Tom Woods 인터뷰 (2025) 

3: Murray N. Rothbard, 경제사상사에 대한 오스트리아학파의 관점 [An Austrian Perspective on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 (미제스 연구소, 2006) 및 스테판 킨셀라, “Volume 3 of Rothbard’s History of Economic Thought,” StephanKinsella.com (Sept. 1, 2009) 참고. 

4: 한스-헤르만 호페,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 중 ‘서문’ 등 참고: 박효종 역 (2004) (“사실 민주주의가 가진 경제적 · 윤리적 결함을 알고 있었지만, 미제스와 라스바드는 민주정이라면 일단 좋은 것으로 보는 입장에 있었고 군주제에서 민주정으로의 변천을 진보로 해석하고 있었다.”)



썸네일 출처: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61561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