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대중문화


대한민국은 아이돌 모델을 근간으로 하는 K팝을 어떻게 세계에 우뚝 세웠나? 다르게 말하면, K팝은 어떻게 세계화에 성공했는가? 필자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첫째, 4개의 대형 공연기획사들이 1995년(SM), 1996년(JYP), 1998년(YG), 2005년(HYBE)에 세워졌다. 이들은 이수만, 박진영, 양현석, 방시혁이라는 공연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가들’이라고 하겠다. 그들은 세계 최초로 공연기획사를 세우고 그 때까지 뮤지션 또는 아티스트 중심의 공연기획을 ‘산업’으로 규정하고 공연기획에 필요한 각종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K팝을 세계화하는 데 성공했다. 대형 공연기획사라고 하더라도 그 규모는 제조 대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세하다(그리고 그 무렵 중소형 공연기획사도 다수 세워졌을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그러나 그들 이전까지 공연기획은 산업으로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영세했고 체계적이지 못했다. 기업가로서 그들은 공연기획을 산업으로 세계 최초로 규정하고 공연기획 산업을 세계화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들은 좁은 국내 시장을 바라보지 않고 세계 시장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K팝을 상업화했다. 그들의 기업가 정신이 빛났기 때문에 K팝은 세계화에 성공했다. 다만 K팝의 세계화·상업화 과정에서 각종 연습생들의 인권과 대우를 좀 더 긍정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K팝의 세계화에는 다른 한 가지 조건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96년 6월 사전심의제는 폐지되었다. 사전심의제는 공연윤리위원회가, 음악의 경우에, 가사나 곡의 일부를 수정할 것을 지시하는 제도로서 1996년 6월까지 존속했던 제도이다. 영화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제도가 문제가 된 것은 그 제도 폐지 직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시대유감’이라는 4집 수록곡을 냈고 냉소와 조롱을 머금고 있었던 그 곡을 공연윤리위원회가 가사의 수정을 지시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런 지시를 거부하고 노랫말을 뺀 연주곡 상태로 발매하는 강수를 두었다. 그런 스토리가 알려지자 사전심의제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강해지면서 결국 1996년 6월에 사전심의제는 폐지되었다. 

사전심의제 폐지는 예술 산업에서 공연자들의 자유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때의 자유의 확장이야말로 한국에서 이후 공연기획 산업이 크게 성장하는 데 초석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HYBE만을 제외하고 대형기획사들이 모두 1990년대 후반에 세워졌음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방시혁도 JYP에서 10여년 간 작곡가로 활동했다는 점은 HYBE의 창업 시기가 다른 대형기획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제2·제3의 BTS를 육성하고자 하는 기업가가 다수 출현할 때 한국 공연기획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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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출처: GEM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