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사회현안 [expand title="저출산 시리즈 목차 <펼치기>" swaptitle="저출산 시리즈 목차 <닫기>"][미제스 코리아 특별칼럼] 저출산 1편: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미제스 코리아 특별칼럼] 저출산 2편: 화폐적 관점에서[/expand] * * * 저출산의 원인을 각 개인이 가진 결혼·출산의 가치관이라는 관점에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조선왕조 신분제는 공식적으로 혁파되었다. 하지만 고종이 그런 개혁을 모두 무효로 선언함으로써 그 이후 신분제는 ‘개인’에게 맡겨졌다. 게다가 신분제에서 해방되더라도 농경사회에서 당시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 정말로 어려웠을 것이다. 군국일본의 식민지배가 시작되었을 때 조선왕조에서 유래한 신분제는 그런 상태였고, 군국일본은 그런 신분제에 대해서 대체로 ‘현상 유지’하겠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1940년대 군국일본이 한인 ‘위안부’를 전쟁에 ‘강제동원’하면서 1894년 이래로 한국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의 인권은 단군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여성의 인권과 관련하여,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와 유사한 일은 몇 번 더 있었지만 가장 최근의 사건은 군국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임은 분명하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 초 경제개발을 시작할 무렵에도 여성의 인권은 위안부 때 수준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바닥을 치고 있었다. 특히 ‘남아선호 사상’, ‘남존여비’, ’장유유서(長幼有序)‘, ‘민간에 대한 관(官) 우위‘ 등은 그 무렵의 주요 가치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농업 중심의 경제로 인하여 스스로 먹고 사는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의 인권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었다. 경제성장으로 각 개인의 소득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학교 교육에 대한 기회가 젊은 여성에게도-젊은 남성 못지 않게-많이 가능해졌다. 1930년 한반도 한인(韓人)의 문맹률은 77.8%였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문맹률이 더 높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금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거의 100%에 가깝다. 한반도에서 학교 교육과 문맹에 있어서 가히 천지개벽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과 자아실현 기간이 길어지면서 결혼 시장에 진입하는 나이가 매우 늦어져 왔고 출산 연령대가 크게 높아졌음도 부정할 수 없다. 경제성장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마지못해 선택했던 ‘전업주부’라는 직업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1960년대 이래로 꾸준히 넓어져 왔다. 게다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소득 불평등의 악화(그 결과 부의 불평등의 악화)는 ‘맞벌이’ 부부를 양산했다. 출산을 결정하는 가임기 여성은 남아선호사상을 버렸고, 남존여비는 처음부터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너무도 쉽게 했으며, 심지어 비혼주의를 주위에 천명하는 일이 매우 당당했다. 게다가 결혼을 하더라도 이혼을 하는 데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로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여성에게 ‘멍에’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 여성들은 출산을 하더라도 1명 이상은 너무 많다는 가치관을 부지부식간에 공유하게 되었다. 결혼과 출산의 결정에 부모님이나 연장자의 권유는 대체로 소용이 없고 여성 자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쉽게 그리고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런 가치관 형성에는 한국인 전체가 저마다 일정한 역할을 해왔다. 게다가 여성 자신도 스스로 돈을 벌어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억압된 삶을 살았던, 결혼 적령기 여성들의 엄마들이 그런 생각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뒤돌아 보면, 박정희가 ‘산아제한’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출산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생겨났음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지적은 산아제한 정책이 30-40년의 기간에는 그 영향이 긍정적이었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산아제한의 부정적 영향은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기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인들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단군 이래 최고에 도달했다. 그런 풍요가 여성들의 인권을 단군 이래 최고의 위치까지 밀어 올려왔다. 게다가 여성의 인권이 남성의 인권만큼 중요하다는 깨달음은 여성의 인권을 밀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소득 불평등의 악화와 여성의 자기 개발 추구는 결혼·출산 연령대를 밀어 올리거나 비혼으로 이르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광복 80주년을 회고할 때, 한반도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한국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의 인권 상승, 여성의 자아실현, (결혼·출산을 기피하는)가치관의 변화 등이고 출산은 그와 반비례하여 낮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 저자의 직관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확산이 경제성장과 생활의 편리함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해 왔지만 결혼·출산에 대한 여성의 가치관의 변화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 저출산의 첫 번째 원인과 두 번째 원인도 가치관의 변화에 작용하여 저출산을 초래해 왔다. 화폐·경제 제도와 경제 정책이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작용하는 방식과 정도는 연구가 필요하다. * * *  썸네일 출처 : gem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