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ana Mercer * 일리아 머서는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칼럼니스트이다. 유대인으로 5세부터 19세까지 이스라엘에서 살았고 이스라엘의 징병제를 거부하였다.

주제 : #세계사 원문 : The Real Israel vs. Hasbara History (게재일 : 2025년 5월 28일 ) 번역 : 김경훈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미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과거의 비극과 참극을 되돌아볼 때 언제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찬양한다. 즉, 미국의 패권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그 생각이다. 편리하게도 그 과정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상은 모두 생략해 버린다. 여기에 더해 그들은 히틀러에 대해선 많이 이야기하지만, 히로시마에 대해서는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역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왜곡해 역사와 신화를 뒤섞은 ‘신화적 역사’를 만들어 왔다. 이를 뒷받침하는 선전이 바로 히브리어로 ‘설명’이라는 뜻의 하스바라(Hasbara)다. 하스바라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반 인륜적 범죄를 이념적으로 미화해, 마치 고귀한 목적을 위한 행위인 것처럼 끊임없이 허구를 만들어내는 선전 장치다.

부인할 수 없이, 미국의 외교정책은 내러티브에 능하다. 제국주의의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화려한 이야기에 설득당한다. 이스라엘 하스바라에 깔린 ‘유대인 우월주의’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많은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의 핵심 가르침, 폭압자와 착취자가 아니라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돌보라는 명령을 외면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스바라나 공식적인 ‘신화적 역사’가 거짓이란 것을 증명할 필요도 없이, 가자 지구의 현실만 봐도 진실을 알 수 있다. 현실 자체가 곧 증거이기 때문이다. 집단 학살의 참혹함은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을 보여 준다. 살아남은 가자 주민들과 순교자 덕분에 이스라엘에 관한 진실은 이제 역사적 맥락을 넘어선 보편적 진실이 되었다.

10월 7일 직후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강철의 검(Operation Swords of Iron)’을 개시하자 몇 가지 자명한 진실이 선명해졌다.

10월 말이 되자 가자 안팎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만행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중 하나는, 하스바라가 가르치는 바와 달리 위기에 처한 이는 이스라엘계 유대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것이며, 이스라엘인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자국 유대인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조직적·무차별적·산업 규모의 살인과 민족 청소를 거리낌 없이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가자의 물리적·정치적·경제적 기반을 전부 파괴했고, 그 결과 가자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황무지’가 되었다. 이 지역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오염된 먼지와 잔해만이 남았다.

가자는 거대한 집단묘지이자 살아 있는 유령들이 떠도는 곳이 되었다.

가자의 땅은 수백만 톤의 건축 잔해와 수만 구의 시신, 그리고 애완동물·가축·식물·동물의 잔해가 뒤섞여 피로 흠뻑 젖어 있다. 악취가 진동하고 노천 오수와 불발탄·군수품의 잔해가 어우러진 지옥 같은 풍경이다.

이스라엘-가자 문제를 꾸준히 연구해온 한 학자는 “이스라엘은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식량 생산 능력 자체를 빼앗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식량 공급과 교환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금융 시스템도 완전히 붕괴시켰다.

믿기 힘들겠지만, 중세 공성전을 연상시키는 봉쇄가 수년간 이어지는 동안에도 가자의 농부들은 10월 7일 이전까지 인구의 3분의 1이 굶주리지 않도록 식량을 공급해 왔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대규모 학살·추방하는 작전을 체계화했고, 그들의 생존 터전과 주거지를 총력전의 대상으로 삼았다.

민간인 학살은 곧 문명에 대한 공격이므로, 이스라엘을 문명의 적이라고 말해도 큰 문제는 없다.

우리의 동맹국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학살, 초법적 처형, 강간, 약탈, 고문, 기아를 사실상 합법화한 국가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범죄집단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인종 학살과 주거 파괴는 이미 국제법과 자연법, 십계명(제6계명의 “살인하지 말라”), 리버테리언 비폭력 원칙, 전쟁법과 인도법까지 모두 위반했다.

옳고 그름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에는 예외가 없다. 이교도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도 무차별 살인을 해선 안 된다.

그런데 오늘날 이스라엘인들은 제6계명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지난 몇 달간 나는 레반트 전역의 이스라엘 학살을 면밀히 관찰했다. 유대는 여론과 정치 담론에서는 연속적인 학살 정당화 선전이 쏟아졌다.

“우리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세상이 깨닫기만을 기다린다.”는 식으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난폭한 행동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허용되었다. 가자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학살은 전 세계를 향해 대성황리에 공개되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게 부족한 것은 역사적 정당성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윤리적으로 비판할 능력이 결여된 듯하다.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믿으며, 검증되지 않은 내러티브 속에서 살아간다.

자연법은 이성·계시·경험으로 알 수 있는 윤리 체계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현실에 뿌리박혀 있는, 인간이 알 수 있는 최고의 법이며 연역적으로 참되고 공정하다.

리버테리언들의 비침해성의 공리(non-aggression axiom)는 바로 자연법의 예다. 학살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반면 실정법(positive law)은 국가가 만든 법이다. 법실증주의(legal positivism)는 정의를 국가의 법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국가는 자연법을 넘어설 권한이 없다.

대부분 문명 사회의 윤리 체계는 무고한 사람을 죽일 권리는 아무도 가지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수십만 명을 죽이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다시 말해,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약탈은 보편적으로 악이다.

학살의 정의를 놓고 공방을 벌일 필요 없이, “국제법 대 자연법”이라는 맥락에서 짧게 짚고 넘어가자.

이스라엘은 이미 〈집단학살범죄 방지 및 처벌 협약〉(Genocide Convention) 제2조가 금지하는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를 파괴”하고, 그 집단의 “생활을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행위를 모두 충족시켰다. 서구 법철학에서 범죄의 핵심 요소인 고의(intention)와 위법성(actus reus)이 결합된 것이다.

미국 역시 이스라엘의 학살에 동참했다. 미국 정권은 이 악덕을 숭배하듯 가담·방조하며, 대량 살상을 위한 탄약을 공급하고 외교적 보호막을 제공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기권해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를 계속 가능케 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비판하거나 제재하려는 국가·국제 기구·자국 내 여론을 협박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집단 처벌’ 정당화를 돕는 하스바라에도 협력했다. 또한 이스라엘이 ‘테러와의 전쟁’을 자위권으로 포장하도록 도와 구조적 폭력을 정상화하는 데 일조했다.

가자 인민에 대한 학살은 미국 정부와 정치 엘리트, 그리고 그들의 선전 매체가 기꺼이 후원했다. 그 언론은 학살 중에도 이스라엘을 ‘피해자’로 묘사했다.

학살에 대해서 국제법은 자연법이나 리버테리언 법과 같은 견해를 공유한다. 〈집단학살범죄 방지 및 처벌 협약〉 제2조는 오직 새디스트적이고 반사회적인 가해자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다수 리버테리언은 국가가 초법적으로 행동하고, 한때 미국 헌법에 스며 들어있던 자연법의 잔재조차도 법과 규정의 그늘에 묻혀 버렸다고 생각한다.

법(국내법이든 국제법이든 부족법이든)이 자연법을 지지하는 한에서만 존중할 만하다. 그러나 법이 생명·자유·재산권을 침해하는 한, 그 법은 악이다. 법은 자연법에 일치할 때만 무해하다.

이 점을 응용해보자면, 팔레스타인인의 생명과 토지에 대한 권리를 지지하는 주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그 권리를 지켜주기만 하면 된다.

어느 국가, 어느 연방 기관, 어느 국제 기구, 혹은 헤즈볼라나 후티 반군이 됐든, 누군가 그 일을 해 주면 된다.

미국에서 연방주의(federalism)는 ‘분할된 주권’을 의미한다. 제임스 매디슨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주정부는 자신의 거주민을 임의로 처형할 수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국가 주권’을 존중한다는 미명하에, 이스라엘이 몇몇 테러리스트(현재는 많은 이들이 ‘저항 전투원’이라 부르는)를 제거한다는 핑계로 점령지 인구를 체계적으로 처형하도록 허용해야 하는가?

오해 마시라. 인권법에는 점령지 민간인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점령지에서의 적대 행위에 관한 헤이그 규정’(Hague Regulations on Belligerent Occupation)에 따르면 저항권도 인정된다. 이조차 자연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즉시 제지되어야 했으며, 무고한 희생자들은 보호받아야 했다. 존 웨인 게이시(John Wayne Gacy)나 제프리 다머(Jeffrey Dahmer)에게 조치를 취하듯 멈춰야 한다.

하지만 학살의 축인 이스라엘은 멈추지 않았다.

아랍 사회는 ‘깨어있지 않은(woke)’ 미개 사회로 간주되며, 가자·서안·시리아·예멘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서방의 학대 정당화에 이용되었다.

서구 중심의 ‘깨어있는 사람들’은 ‘깨어있지 않은 사회’에는 저항권이 없다고 본다. 그들의 저항을 우리는 테러리즘이라 부른다.

팔레스타인인을 보호해야 할 ‘책임’ 은 실질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가자의 영혼을 제외한 모든 것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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