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ana Mercer * 일리아 머서는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칼럼니스트이다. 유대인으로 5세부터 19세까지 이스라엘에서 살았고 이스라엘의 징병제를 거부하였다.

주제 : #세계사 원문 : The Real Israel vs. Hasbara History (게재일 : 2025년 5월 28일 ) 번역 : 김경훈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2025년 1월, 2천여 개의 팔레스타인 가문이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대(大)팔레스타인 귀환(Great Palestinian Return to Northern Gaza)’이 일어났다.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북부 가자의 폐허가 된 고향으로 행진해 돌아온 것이다.

땅은 팔레스타인 정체성의 핵심이다. 조상 대대로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위대한 증거는 바로 이 헌신과 회복력에 있다.

이와 대비해 보라. 이스라엘의 북부·남부 정착민들은 땅에 대한 애정보다는 학살 정당화를 기반으로 한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돌아오려면 이스라엘군이 자신들의 토착 이웃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또 한 가지 대비해 보라. 가자에서 벌어진 환경 파괴의 정도를 보라. 이는 이스라엘이 생태계를 ‘함께 공유하고 돌본다’고 주장하는 것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스라엘계 유대인들은 땅에 대한 애정보다 탐욕을 품고 있다.

다시 우리의 ‘동맹국’ 이스라엘로 돌아가 보자.

‘민주정 국가가 도덕적 권위를 지니지 않는가?’ 우리는 흔히 “우리의 동맹 이스라엘은 민주적 가치를 공유한다”라는 설교를 듣지만, 다수의 승인 아래 자행된 살인은 여전히 살인이다.

독재자의 명령이든 다수의 의지이든, 국가 내부든 외부든, ‘선한 자’든 ‘악한 자’든, 무고한 자에 대한 살인은 언제나 살인이다.

그러나 21세기 이 참혹함은 인기투표를 통해 승인되었다. 이스라엘 전역의 여론조사 결과, 유대계 이스라엘인의 대다수는 가자의 첨단 기술 기반 대량학살과 인종 청소를 정당화·미화·은폐했다.

학살 종료를 요구하는 마지막 시도로, 2025년 2월까지도 유대계 이스라엘인의 80%가 트럼프의 가자 계획을 지지했다. 이 중 단 3%만이 이를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

트럼프의 계획은 가자 내 강제 추방(인구 감소)과 대규모 처형을 포함하는 바이든의 학살을 확장·완성하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현장 증거를 제거해 학살을 은폐하려 했고, 생존자들을 중동 전역으로 흩어 놓아 가자 인민을 완전히 소멸시키려 했다.

어쨌든 이스라엘 내에서 학살은 국민투표로 통과되었다.

놀랄 일은 아니다. 이스라엘군은 이스라엘 그 자체다. 모든 이스라엘인이 복무해야 하는 시민의 군대이자 유대-이스라엘 공동체의 목소리다. 이스라엘의 아들딸들은 학살의 주인공들이다.

우리는 그들이 가자를 초토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치 비디오 게임 속 캐릭터처럼 잔해 사이를 헤치며 걸어 다니는 젊은이들을 증발시키고, 희생자들을 조롱하며, 아이들을 저격하고, 남성을 강간하고, 상점을 약탈하고, 시신과 유품을 뒤지고, 주거 건물을 통째로 폭파했다.

확실히, 모든 이스라엘 유대인이 징집되지만 징집 자체가 사후 범죄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수천 대의 이스라엘군 휴대전화가 전 세계로 전송한 자부심과 즐거움은, 이스라엘 사회 분위기와 목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니 “명령이었을 뿐”이라는 변명은 이스라엘 학살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 앞에서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쏘고 약탈하고 폭격하며 즐겼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스라엘 국가는 학살 범죄의 주체다. 여론조사 결과와 지도층의 반응 모두, 이스라엘 사회 전체가 소시오패스 성향을 띠고 있다. 병사부터 대법관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리버테리언에게는 불편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명확하다. 가자 팔레스타인인 학살 문제에서 유대-이스라엘 사회는 국가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일관되게, 이스라엘 여론은 학살 찬반의 이분법이 아니라 “지금 수준이 적당한가, 더해야 하나, 덜해야 하나”라는 스펙트럼으로 분열되었다.

설문조사 결과, 이스라엘인의 다수는 오직 자신들만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대체로 이스라엘인들은 ‘유대인 우월주의’를 믿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조직적·사회적 정신병 때문에 참담한 대가를 치렀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인들에게 묻으면, 그들은 하스바라를 풀어놓는다. “자위권이다”라고 한다. “제3세력 소행”이라고 한다.

그 범죄를 저지른 건 누구냐고 물으면, “이게 다 하마스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말하고, 서방은 받아먹는다.

하마스 책임 이론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는 분명하다. 남의 잘못을 이유로 실시간으로 자행 중인 범죄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국가는 당신 동네에 불법자가 있다는 이유로 당신을 쫓아내고 폭격할 권리가 없다.

‘욱해서 저지른 범죄(crime of passion)’ 변명은 한 사건에만 쓰이는 것이다. 수백만 명의 무고한 이들에 대한 수개월간의 잔혹한 학살에 적용할 변명이 아니다.

지나온 행보를 봤을 때 이스라엘군의 그 목표는 정규군을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레반트 전역과 가자에서 인구 밀집지를 완전히 초토화해 복종시키는 것이다.

어떤 나라가 자기 학살 전술을 법으로 공인하고 이름까지 붙였는가? “다히예(Dahiyeh) 교리”는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 다히예에서 따온 이름으로, 그곳 시아파 민간인을 상대로 이스라엘 공군이 완성한 학살 전술을 뜻한다.

“잔디 깎기(mowing the lawn)”는 이스라엘 전역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을 지칭하는 은어다.

실화 범죄 다큐멘터리 애호가라면, I-5 고속도로 연쇄살인범을 “I-5 교리” 창시자로 명명하고 위키피디아에 기록한다고 상상해 보라.

분명, 이스라엘 내 저항 시위도 오로지 자기 이익에만 몰두했다. 인질 구출 시위에는 초월적 인류애가 없었다.

여론과 그들이 뱉은 말에 따르면, 대부분 이스라엘계 유대인들은 단순히 ‘자기 인질’을 돌려받기를 원했을 뿐, 가자를 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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