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n Paul 공화당 소속으로 텍사스주 연방 하원의원을 23년 동안 역임한  론 폴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자유의 챔피언이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산부인과 의사였던 그는 머레이 라스바드의 <미국의 대공황&gt;을 읽고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일관된 자유주의에 눈을 뜨게 되었다. 미제스 연구소가 1982년에 창립될 당시 초기 구성원 중 한 명이었으며, 현재도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및 이사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8년 대통령 선거에 자유당(Libertarian Party) 후보로 출마했으며, 2008년, 2012년 공화당 대통령 선거 경선에 도전하며 자유주의 열풍을 일으켰다. 2013년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였으며, 론 폴 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제 : #인물 원문 : Who Killed Charlie Kirk? (게재일: 2025년 9월 16일) 번역: 전계운 대표 * * * 저는 지난 몇 년간 찰리 커크의 방송에 몇 차례 출연할 기회가 있었고, 그는 항상 신사적이고 존중하는 태도를 지녔으며 사상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저는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의견이 다른 분야에서도 그는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옹호했고, 정치적인 다름을 떠나서 표현의 자유와 대화의 가치를 젊은 세대에게 설득하는 일을 자신의 업으로 삼았습니다.   불과 서른한 살의 나이에 그는 이미 전국에서 가장 큰 보수주의 청년 단체를 설립하고 이끌었으며 이로 인해 보수주의 운동은 물론 공화당의 미래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제가 공화당 대선 과정에서 깨달았던 것처럼 이 나라의 청년들은 자유, 평화, 번영이라는 이념에 진정으로 고무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벌어진 찰리 커크의 끔찍한 살인 사건에 대해 우리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FBI와 여타 정부 기관들이 내놓은 설명은 완전히 앞뒤가 맞지 않고, 전혀 말이 되지 않은 설명으로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커크와 가까운 일부 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외교 정책 입장을 기존의 신보수주의적 군국주의(neoconservative militarism)에서 벗어나 불간섭주의적(non-interventionism)인 입장으로 옮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터커 칼슨은 최근에 커크가 직접 백악관에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에게 군사적인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고 칼슨은 밝혔습니다.  마찬가지로 보수 성향의 팟캐스터이자 커크의 절친인 오웬스(Candace Owens)가 자신의 방송에서 커크가 “정신적인 위기”를 겪고 있었으며 과거에 자신이 지지하던 군국주의적인 입장을 버리고, 특히 지금의 중동 지역에서의 불안정한 사태와 관련하여 미국 우선주의-불간섭주의를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찰리 커크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의 사상 변화를 용납하지 못한 세력에 의해 살해당한 것일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평화 사상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자들은 과거 수 많은 정치적인 암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를 은폐하려 들 것이란 점입니다. 제가 최근에 출간했던 책 『은밀한 쿠데타: 누가 서구 문명을 훔쳤는가?』(The Surreptitious Coup: Who Stole Western Civilization?)에서 말했듯, 격동의 1960년대에 냉전 대립 구도를 깨기 위해 현상 유지에 도전하던 존 F. 케네디, 로버트 F.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목사 같은 미국의 주요 인물들이 여러 차례 피살을 당했습니다. 지난 세기에 이 평화의 지도자들을 암살한 진짜 범인들은 진리를 믿지 않는 허무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오직 힘 곧, 총구에서 나오는 힘이었습니다. 사상이라는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는 그들은 도전을 억누르고 이 나라가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잘라버리는 것을 택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이 일어난 지 60년이 넘었지만, 대다수의 미국민들은 그가 어떻게, 왜 살해당했는지에 대해 나온 공식적인 발표를 믿고 있지 않습니다. 거짓의 벽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해 보일지라도 진실은 결국 드러나는 법입니다.  찰리 커크가 자신의 조직을 건국의 아버지들이 추구했던 외교정책으로 전환하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죽음은 더욱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어떤 군대도, 어떤 암살자도 때가 무르익은 사상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커크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일 것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 썸네일 출처 :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151155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