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ph T. Salerno 현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학장(學長)에 해당하는 인물을 선정해야 한다면,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영역 부대표이자 페이스 대학교 경제학 명예교수인 조셉 살레르노만이 그 자격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살레르노는 학부생 시절에 순수 리버테리어니즘으로서의 아나코-캐피탈리즘을 설명하는 머레이 라스바드의 글을 읽고 오스트리아학파를 공부하기로 결정하였다.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비교연구, 경제사상사, 경제계산논쟁, 기업가정신, 화폐이론 및 정책연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50개 이상의 학술논문 및 저서를 발표한 그는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후계자중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의 경제학자로 평가받는다.

주제 : #인플레이션 원문 : Hyperinflation and the Destruction of Human Personality (게재일 : 2024년 5월 30일) 번역 : 전계운 대표


독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화폐와 재산의 파괴가 인간의 인격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은 1923년 독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례에서 가장 생생하게 드러난다. 

극단적인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경우 화폐가치가 0을 향해 치달으면서 재산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인간의 인격은 메말라가며 사회는 붕괴한다.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예리하게 관찰한 독일의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콘라드 하이덴(Konrad Heiden)은 화폐와 재산, 그리고 인간의 인격사이의 이 중요한 관계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하이덴은 이렇게 썼다. “독일 국민은 한 세기 동안 최고의 가치로 여겨졌던 물질적인 가치가 붕괴되는 것을 가장 먼저 목격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독일은 현대 인류에게 왕 같은 자부심을 안겨주었던 무한한 자유 재산의 죽음을 가장 먼저 경험한 국가 중 하나였다. 화폐는 그 가치를 잃었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가치를 가질 수 있겠는가? 물론 많은 사람들은 돈이 없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것ㅡ그것은 신들의 황혼이었다….냉소적인 경박함이 사람들의 영혼을 파고들었고, 아무도 자신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으며,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조차 궁금해했다.”[note] 하이덴은 1923년 소규모 민주정 단체의 리더였는데 이 시기에 그는 반나치 퍼레이드, 대규모 시위, 대형 포스터 게재 등을 지원하며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집권 운동에 맞서 싸웠다. 하이덴의 저서 “총통: 히틀러의 집권”에서 발췌한 내용은 “1923년 독일 인플레이션”에서 했다. 번역 랄프 만하임(Ralph Manheim) (보스턴: 휴튼 미플린, 1944), ed. 프리츠 K. 링거 (뉴욕: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 1969), 164-218.[/note]

하이덴의 통찰력은 독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한 여성의 증언에서 잘 드러난다. 에르나 폰 푸스타우는 함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던 중산층으로 미국의 저명한 작가 펄 벅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푸스타우의 회상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타산적인 혼란 속에서 독일 국민이 어떻게 지적, 영적 의지를 잃어버렸는지 보여준다. 과거에는 일상적이었던 간단한 회계 계산도 할 수 없게 되자 사고와 언어에 혼란이 생겼다. 푸스타우는 이렇게 회상했다. “수치상으로는 계속 오르고 또 오르고 물가도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에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고,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보다는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 훨씬 더 눈에 띄었습니다. 혼란스럽지 않나요? 하지만 이 혼란이야말로 인플레이션의 본질이고, 인플레이션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어요. 모든 것이 그냥 미친 것처럼 보였고 그로 인해 사람들도 미쳐버렸죠.”

푸스타우는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 가사 한 구절을 인용했는데 이는 즉각적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일어난 재산의 파괴를 암시했다. “우리는 할머니의 작은 오두막집과 첫번째, 두번째 대출을 술로 날려버리고 있다네.” 이어 푸스타우는 계속해서 말했다. “저축은 건전한 나라의 건강과 부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건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미쳐버렸고, 신경질적이고, 광기 어린 나라가 되어가고 있어요.” 푸스타우는 또한 사회 구조의 갑작스러운 붕괴가 초래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언급하며 이렇게 한탄했다. “슬픈 세상이었죠. 누구도 남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고, 모든 것이 우연과 정도의 문제였을 뿐이었어요. 할머니의 좋았던 옛 시절을 기억하는 소녀에게는 슬픈 세상이었고 슬픈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시대는 우리를 시니컬하게 만들었습니다.”

음악 애호가였던 푸스타우는 그녀와 갑자기 가난해진 중산층 친구들이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을 보기 위해 입석 티켓을 사려고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고생담을 이야기했다. 극장의 대부분의 좌석은 인플레이션으로 횡재를 얻은 사람들이 산 것으로 이들은 진정한 음악 애호가가 아니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공연을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은 푸스타우에게 화폐의 오작동이 한 사람의 자아 정체성 핵심에까지 침투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으며 그녀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목표와 세상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따라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바그너의 신들은] 온 세상에 불을 질렀지만 그것은 위대한 일, 영웅적인 행동, 사랑 그러니까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표를 얻기 위해 싸우고, 동전을 얻기 위해 싸웁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이 추악한 작은 것들입니다…모든 것이 돈과 뒤섞여 있었죠. 예전에 우리는 돈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었고 “돈을 더러운 것”이라고 했었으며 “사람은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모든 것이 돈과, 그것도 오직 작은 액수의 돈과 자질구레한 것들이 뒤섞여있었습니다.” 

푸스타우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문화적, 도덕적 영향을 전쟁의 영향과 비교하며 자신의 회상을 마무리지었다. “인플레이션은 전쟁 같았습니다. 금융적인 수단으로 치러진 전투였죠. 도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집들이 아직 폭격으로 폐허가 되진 않았지만 희생자는 수백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들은 재산과 저축을 잃었고, 인플레이션 충격에 얼빠져 허우적 댔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들에게 일어났는지, 그리고 자신들을 패배시킨 적이 누구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도덕, 윤리, 품위라는 옛 가치들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사회학자 하이덴은 에르나 푸스타우와 같은 수백만 명의 독일인들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휘말리면서 겪은 경험들을 통해 얻은 총론을 생생하게 요약했다. “인간은 돈으로 자신을 평가했고, 돈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했으며, 돈을 통해서 누군가였거나 적어도 누군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인간은 태어나고 죽고, 흥망성쇠를 거듭하지만 돈은 영원하고 불멸한 존재였다. 이제 국가가 이 불멸의 존재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국가는 돈의 정복자이자 계승자가 되었다. 그래서 국가는 모든 것이 되었다. 인간은 자신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하이덴이 예리하게 인지했던 것처럼 독일에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가 폐지되자 재산이 무의미해졌고, 이로 인해 인간 인격의 근간이 날아가버렸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져왔던 사회 및 경제 제도가 붕괴되어 사라지고, 사회 구조 자체가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존재는 원자화되고 목적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개인의 내면 삶에서 의미와 목적이 사라지고 상당 부분 소멸되면서 사상, 언어, 가치, 문화 등 모든 것이 기형적으로 변했다. 

하이덴은 이를 간결하게 요약했다. “국가는 재산, 생계, 인격을 말살하고, 개인을 쥐어짜고 깍아내렸으며, 재산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 재산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파괴했다. 정신은 대파괴로 피폐해졌다. 국가는 가장 약한 사람부터 시작해서 경제적인 사람을 무너뜨렸다.” 하이덴은 여기서 추상적인 의미에서 “경제적인 인간”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사유재산과 시장경제에 뿌리를 둔 사회적인 존재인 살과 피를 가진 부르주아 인간을 언급한 것이다. 


썸네일 출처 :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22112538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