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경제사 [expand title="2024년 미제스 와이어 목차 <펼치기>" swaptitle="2024년 미제스 와이어 목차 <닫기>"][미제스 와이어 1월호] ‘보이는 손’은 ‘보이지 않는 손’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 [미제스 와이어 2월호] 저출산: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미제스 와이어 3월호] 의료계와 복지부가 해야 할 일 [미제스 와이어 4월호] 의료계의 주요 과제들 [미제스 와이어 5월호] 상생협약 대 사적 국가 [미제스 와이어 6월호] 지금 시대의 정신은 무엇인가 [미제스 와이어 7월호] 정치개혁과 선거보조금 제도의 폐지 [/expand] * * * 일본은행은 지난 7월 3일 발행된 새 지폐 1만엔권에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인물의 얼굴을 넣었다. 국내의 한 신문은 그를 ‘일본 자본주의의 설계자’라고 치켜세웠고 일본 국민은 그를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부른다고 한다. 필자는 에이이치가 당시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1910-1945년 기간 일본을 자본주의 국가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1910-1945년 기간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의 대부분-한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까지도-은 일본을 자본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동아시아 국가에 자본주의를 전파했다고 지적한다. 이 점은 명치유신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설립자이자 위대한 리버테리언인 미제스(Mises)는 자본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것은 “사유재산의 보호, 계약의 자유, 건전한 화폐(sound money)” 등이다. 건전한 화폐란 상품화폐 또는 그를 기초로 하는 태환지폐를 지칭한다. 만약 셋 중에 하나 또는 둘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간섭주의 또는 사회주의이다. 주지하듯이, 1910-1945년 기간 일본제국은 한반도, 대만 등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식민지를 만드는 과정에 식민지 사람들의 사유재산을 파괴하거나 약탈했고, 계약의 자유를 탈취했으며, 화폐도 불환지폐를 발행하여 건전한 화폐로부터 멀어졌다. 즉 일본제국은, 대외적으로는, 자본주의 국가가 될 수 없었다. 일제의 이데올로기인 군국주의 자체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가 일본 내에서는 위 세 가지 조건을 잘 지켰을 수 있다. 그 경우에는 일본 내부는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일 뿐이다. 실제로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치는 동안에 일제는 일본 민간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징수했다. 두 번의 내전으로 다수 민간들이 죽거나 다쳤고, 많은 자유가 억압되고 제한되었으며, 군복무가 의무화되면서 민간들의 사유재산은 보호받지 못했다. 즉 그 기간에 일본은 경제체제로서 자본주의를 채택한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게다가, 일본은 1897년 화폐법으로 금본위제를 실시했으나 1931년 12월부터 금본위제를 정지하고 불환지폐제로 전환했다. 그 중간 기간에 일본은행은 1917년 9월 12일부터 1930년 1월까지 ‘금해금’을 실시했다. 다시 말하면, 1897-1917년 기간에 금본위제, 1917-1930년 기간 금본위제 중단(즉 불환지폐제), 1930-1931년 금본위제 복귀, 1931년 12월 불환지폐제로의 복귀와 1945년까지 지속이었다. 일본은 사실상 1917년 이후는 불환지폐제이다. 이것만으로도 1917년 이후는 일제가 자본주의 국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른 점은 더 이상 검토할 필요가 없다. 1910-1945년 기간 한반도의 경제체제를 자본주의라고 규정하는 역사가들이 적지 않다. 진실은 대부분의 역사가가 그렇게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일본 제일은행이 1901년 대한제국 내에서 발행한 화폐도 불환지폐이지만 1910-1945년 기간에 주요 교환수단은 불환지폐이다. 게다가, 일본제국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한인들로부터 계약의 자유를 탈취했을 뿐만 아니라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3·1운동을 생각해보라. 그 당시 거래를 잘 훑어보면 사유재산의 보호와 계약의 자유가 잘 지켜진 경우가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관심이 있었던 것은 한반도 한인들을 약탈하는 것이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동시대 어떤 일본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한 언론은 전한다. 그가 열심히 활동했던 19세기와 달리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군국주의를 추구한 제국으로서 자본주의 국가로 볼 수는 없다. 1910-1945년 기간의 한반도는 그런 일본의 식민 지배로 처음부터 자본주의를 경제체제로 채택할 자유가 없었다. 불행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인가? 미국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가? 지구상의 다른 나라는? 대외무역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그런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 * * 썸네일 출처 : https://brunch.co.kr/@namoosanchek/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