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ph Solis-Mullen * 멀린은 정치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랄프 라이코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다. 스프링아버 대학교, 일리노이 대학교, 미주리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제스 연구소, 오스트리아 경제학 분기 저널 , 자유주의 연구 저널 , 미국 혁명 저널, Anti war등에 글을 활발히 기고하고 있다. 주제 : #정치철학과_윤리학 원문 : Daoism and the Limits of Rule: Ethical Anarchism Without Natural Right (게재일 : 2026년 1월 27일) 번역 : 전계운 대표 * * * 현대 리버테리어니즘 정치 이론은 대개 중세 자연법에서 기원하여 초기 근대 자유주의(liberalism)을 거쳐 정교해졌으며, 머레이 라스바드(Murray Rothbard)와 같은 사상가들이 제기한 국가 권력에 대한 급진적 비판에서 정점에 이른 독특한 서구 유산으로 소개되곤 한다. 이러한 인식이 대체로 정확하기는 하지만, 통치에 대한 적대감, 권위에 대한 회의론, 그리고 자발적 사회 질서에 대한 신뢰가 비단 서구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로크나 아퀴나스보다 훨씬 이전부터 고대 도교 사상가(Taoist-노장철학 신봉자)들은 행정지상주의, 도덕적 교화를 내세운 통치(moralized rule), 그리고 사회 공학을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게 거부하는 정치 철학을 역설해왔다. 비록 도교가 고전적 자유주의 관점에서 자연권이나 재산권에 관한 교리를 발전시키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교는 인식론적으로 겸허와 통치 그 자체에 대한 깊은 불신에 근거한 일종의 전(前) 근대적 윤리적 아나키즘(ethical anarchism)을 대변한다. 도교를 라스바드적인 관점에서 검토하면 리버테리언 사상과의 유사점과 그 한계가 모두 명확해진다. 도교는 국가를 오만과 무지, 그리고 도덕적 명분에 의해 움직이는 강압적인 기관으로 보는데 이는 라스바드의 비판과 놀라울 정도로 궤를 같이하고 있다. 동시에, 도교 특유의 정적주의(Quietism)와 법 이론의 부재는 자유를 위한 실질적인 토대를 구축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직시할 때, 도교를 지나치게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진정한 반(反) 국가주의적 동력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도교 정치 철학의 핵심에는 흔히 “무위(無爲-wu wei)”로 번역되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보다는 간섭하지 않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도교 통치자는 개혁가도, 계획가도, 도덕 교사도 아니다. 그는 통치를 삼감으로써 가장 잘 다스린다. 고대 도교 문헌들은 정치적 혼란이 통치력의 부족이 아니라, 질서를 강요하려는 과도한 시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도덕경』(The Tao Te Ching)은 법령이 늘어나는 것이 가난과 혼란, 그리고 범죄를 낳는다고 직설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단지 가혹한 통치에 대한 도덕적인 비판을 넘어선 인식론적인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도교 사상가들은 통치자가 사회를 개선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경제 활동을 규제하고, 도덕에 따를 것을 강요하며, 인간의 행동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사회 과정을 왜곡하고 의도치 않은 부작용만을 양산할 뿐이다. 이러한 인식론적 회의주의는 국가 계획에 대한 라스바드의 비판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라스바드는 『인간, 경제, 국가』(Man, Economy and State)에서 중앙 집중화된 권력은 자원을 배분하거나 인간의 행동을 왜곡 없이 유도하는 데 필요한 ‘분산된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라스바드는 이 통찰의 근거를 형이상학이 아닌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두었지만, 그 기저에 깔린 직관은 동일하다. 바로 지식의 불충분함이다. 따라서 도교가 정치적 권위를 거부하는 이유는 통치자가 태생적으로 악해서가 아니라, 통치라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한 인식론적 위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도교는 유교 사상이 가미된 중국의 고전 법가(Legalism)보다는, 현대 리버테리언들의 기술관료주의(Technocracy) 비판에 훨씬 가깝다. 또한 도교는 도덕적 교화를 내세운 통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유교와 극명하게 갈린다. 유교적 정치 사상은 통치를 교육 사업으로 간주한다. 즉, 통치자가 스스로 덕을 닦아 백성들에게 올바른 행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도교는 이러한 기획 전체를 타락한 것으로 간주한다. 통치자가 덕을 가르치려드는 순간, 위선과 야먕, 그리고 사회적 부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 중심의 통치에 대한 적대감은 “공공의 이익” 전통에 대한 라스바드의 끈질긴 비판과 일맥상통한다. 라스바드는 『자유의 윤리』(The Ethics of Liberty)에서 도덕적 수사야말로 강압 행위를 정당화하는 국가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미덕, 질서, 사회적 화합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실제로는 폭력을 은폐하고 복종을 도덕적 의무로 둔갑시킬 뿐이다. 도교 문헌들은 이미 수 세기 전에 이러한 비판을 예견했다. 그들은 도덕적 개혁가들을 위험한 참견꾼으로 묘사하며 그들의 노력을 오히려 자신들이 척결하겠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악덕들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도교 통치자는 백성을 가르치거나, 고양시키거나, 교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사람들을 내버려 둘 뿐이다. 도교는 간섭이 물러날 때 사회 질서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고 가정한다. 가족, 관습 그리고 지역의 관례들은 국가의 법령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규제한다. 화합이란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은 훗날 고전적 자유주의자들과 오스트리아 학파 사상가들이 정립한 자발적 질서 전통과 매우 흡사하다. 라스바드 역시 자발적 질서를 강조하는 동시에, 이 개념을 빌미로 국가의 권위를 슬그머니 다시 도입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했다. 그는 『권력과 시장』(Power and Market)에서 자발적인 상호작용은 중앙집중적인 통제 없이도 조정을 만들어내며, 국가의 개입은 예외없이 사회 협력을 방해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도교는 가격이나 교환 이론 같은 경제적 분석 없이도 유사한 결론에 도달한다. 도교가 제시하는 자발적 질서의 비전은 경제적이라기보다 윤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이지만, 그 정치적인 함의는 같다. 즉, 통치는 불필요하며 대개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도덕경』이 최소한의 통치를 제안한다면, 도교 철학자 장자(莊子)의 저술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전한 아나키즘에 근접한다. 장자는 통치자들을 조롱하고 정치적 야망을 비웃으며, 국가에 봉사하는 행위를 도덕적 타락으로 취급한다. 관직을 탐하는 학자들은 허영심에 사로잡힌 부패한 인물로 묘사되는 반면, 정계에서 물러난 이들은 고결한 인격자로 칭송받는다. 이러한 태도는 국가를 강제력을 휘두르려는 자들을 끌어모으는 약탈적 기관으로 보는 라스바드의 시각과 강력하게 맞물린다. 라스바드는 『국가의 해부』(Anatomy of the State)와 같은 에세이에서 정치 권력이 인센티브를 왜곡하며, 봉사가 아닌 지배에 보상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적 권위에 품격을 부여하기를 거부한 장자의 태도는, 국가는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정당성 박탈(Delegitimation)의 대상이라고 한 라스바드의 주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도교를 리버테리언 사상으로 완전히 편입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도교에는 자연권 이론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교는 자기소유권, 재산권, 혹은 법 이론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간섭이 해롭다고 비판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불법인지, 혹은 분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는다. 라스바드에게 있어서 이러한 부재는 결정적인 결함이다. 리버테리어니즘은 단순히 반(反) 국가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소유권과 재산권 규범에 근거한 하나의 정의론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윤리) 도교에는 통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있지만, 분쟁이나 저항을 위한 틀은 마련해주지 않는다. 권력에 대한 도교의 대응은 대결이라기보다 후퇴(withdrawal)에 가깝다. 이러한 정적주의는 또 다른 차이점을 드러낸다. 라스바드는 세금, 징병, 규제를 일종의 침해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도덕적인 저항을 강조했지만, 도교는 흔히 그저 무관심할 것이나 은둔할 것을 권한다. 도교는 문화적으로 권위를 약화시키지만, 그 권위에 맞설 권리를 명문화 하지 않는다. 따라서 도교 정치 철학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는 “초기 리버테리언 사상”이 아니라 인식론적 겸허에 기반한 윤리적 아나키즘이다. 도교가 통치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권리를 침해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교의 아나키즘은 법적 권리 체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Negative) 성격을 띈다. 즉, 통치자의 역량과 도덕적 필요성을 부정함으로써 권위를 해체하는 방식이다. 라스바드라면 이러한 접근 방식의 가치와 불충분함을 동시에 인식했을 것이다. 도교는 권력의 위선과 오만을 비범할 정도로 명확하게 폭로하지만, 이를 자유에 관한 이론으로 대체하지는 못한다. 즉, 제도적 대안을 세우지 않은 채 국가의 정당성만을 침식시킬 뿐이다. 도교는 정치 사상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도교는 혼돈이나 허무주의가 아니라, 통치자가 무엇을 알고 행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겸허에 뿌리를 두고 '통치 그 자체'를 거부해 온 가장 끈기 있는 전근대 사상 중 하나다. 라스바드적인 틀로 이를 읽어낼 때, 도교는 비록 권리에 기반한 리버테리언 사상과는 호환되지 않을지라도, 국가 권력 비판을 위한 철학적 우군으로 등장한다 도교를 자유주의가 아닌 '윤리적 아나키즘'으로 인식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해석을 방지하는 동시에, 서구적 전통 너머의 반(反)국가주의 전통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 또한 이는 라스바드가 거듭 강조했던 결정적인 교훈을 상기시킨다. 가장 위험한 정부는 가혹하게 다스리는 정부가 아니라, 자신의 지혜를 과신하며 다스리는 정부라는 사실을 말이다. * * * 썸네일 출처 : gemini
자연권이 부재한 윤리적 아나키즘: 도교와 통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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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Solis-Mu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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