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상하이 인민출판사에서 출간한 『Money: Sound and Unsound』의 새로운 중국어판에 실린 조셉 살레르노의 서문이다.]
2010년에 영어로 처음 출간 된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건전한 화폐에 대한 개념은 16세기 스페인 스콜라 철학자들의 저술에서 현대 화폐 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건전화폐 이론의 씨앗은 스콜라 학자들보다 수 세기 앞선 중국의 문헌에 이미 나타나 있었다.1)
중국은 무게를 기준으로 가치를 매기고 교환하는 금속화폐를 발전시킨 최초의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다. 여러 자료는 이러한 화폐제도가 상나라(기원전 1766–1122년) 또는 주나라(기원전 1122–221년) 때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중국은 귀금속을 화폐로 사용한 최초의 나라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으며, 주화를 발명한 나라였을 가능성도 있다. 순수한 금속화폐제도를 오랫동안 운용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중국의 관료와 왕실 고문, 철학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제도의 기원과 작동방식을 탐구하고 논의하며, 그것을 원활히 운용하는 데 적합한 정책이 무엇인지 숙고하게 했다. 따라서 중국에서 기원전 700년경부터 서기 1200년경까지 약 1,900년에 걸쳐 풍부한 화폐사상의 전통이 발전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화폐이론과 정책에 관한 이 문헌들에는 유럽의 저술에서 수 세기 뒤에야 등장할 관념과 통찰, 논쟁이 담겨 있었다. 특히 이러한 중국 화폐사상의 전통을 형성한 몇몇 사상가는 이 책의 주제인 건전화폐 이론의 개념적 토대를 마련했다.
화폐의 발생에 관한 견해는 이르면 기원전 7세기에도 나타났지만, 화폐의 기원에 관해 가장 널리 퍼진 견해는 기원전 6세기의 정치가 선기(單旗, 기원전 585년 출생)에게서 나왔다. 선기는 고대의 철인왕 가운데 한 사람이 재화의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화폐를 발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대의 여러 중국 저술가는 이 설을 반박하며 화폐가 시장 현상으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04–91년), 나필(羅泌, 서기 1165–1173년), 섭적(葉適, 서기 1150–1223년)은 대체로 화폐가 상품거래에서 발생했으며 상품교환이 없었다면 출현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군주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으로 화폐를 받아들인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화폐에 관해 올바른 이론을 세우는 첫걸음은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화폐의 가치도 결코 고정불변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초기 『묵경』(墨經, 기원전 468–376년)을 편찬한 중국 철학자들은 이 핵심을 꿰뚫어 보았다. 그들은 당시 널리 유통되던 도전(刀錢)과 같은 금속화폐가 무게를 기준으로 가치가 매겨지고 교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화폐는 액면가치가 고정되어 있더라도 그 실질가치는 안정되어 있지 않으며 상품가격과 반대 방향으로 변동한다고 주장했다. 상품가격이 높을 때 화폐는 “가벼웠다.” 다시 말해 구매력이 낮았다. 반대로 상품가격이 낮을 때 화폐는 “무거웠다.” 곧 구매력이 높았다. 따라서 화폐 사정으로 인해 상품의 명목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면, 실제로 상품의 실질가격이 높은 것이 아니라 화폐가 “가벼워진”, 즉 가치가 하락한 것이었다.
화폐의 구매력을 결정하는 시장조건을 탐구하면서, 8세기 중국 저술가 유질(劉秩, 서기 734년)과 육지(陸贄, 서기 794년)는 화폐수량설, 곧 화폐의 수요·공급 이론을 명확하게 정립했는데 이는 장 보댕(Jean Bodin)과 스페인 스콜라학자들이 이 이론을 유럽 사상에 도입하기 8세기 전의 일이었다. 유질은 인구가 화폐공급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면 화폐의 구매력이 상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구 증가가 노동력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에 따라 상품공급도 늘어난다고 추론했다. 그 결과 화폐수요의 증가가 화폐공급을 웃돌면서 화폐의 구매력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높은 물가가 화폐의 “과잉”에서 비롯된다고 추론하고, 화폐의 구매력을 높이려면 화폐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질과 동시대 인물인 육지 역시 화폐량이 상품가격과 화폐의 구매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화폐량이 비교적 적으면 상품은 싸고 화폐는 “무거우며”, 화폐량이 많으면 상품은 비싸고 화폐는 “가볍다.” 육지는 이 이론으로부터 정부가 화폐량을 바꿈으로써 물가수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중국의 화폐사상가들은 화폐 주조를 어떠한 제도 아래 둘 것인가에도 주목했다. 화폐 주조가 경제 내 화폐의 양과 질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기원전 175년부터 서기 734년까지 화폐 주조 문제를 둘러싸고 적어도 네 차례의 큰 논쟁이 벌어졌다. 핵심 쟁점은 화폐 주조를 민간의 분권적 사업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중앙정부가 독점하는 군주의 특권으로 삼을 것인가였다.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세 번째 논쟁(서기 457년)과 네 번째 논쟁(서기 734년)에서 조정 대신들이 나라의 화폐 부족을 해소할 방안으로 민간 주조를 용기 있게 제안했다는 점이다.
내 책은 중국과 유럽을 아우르는 이 위대한 건전화폐 이론의 전통에 보태는 작은 기여다. 이 번역본이 오늘날 중국 학자들에게, 고대 선현들의 뛰어난 저술에서 처음 제시된 이 전통을 되살리고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란다.
각주1: Zheng Xueyi, Yaguang Zhang, John Whalley, 「중국의 역사적 관점에서 본 화폐이론」(“Monetary Theory from a Chinese Historical Perspective”), NBER Working Paper 16092, 2010년 6월. 이하의 논의는 이 연구논문에 바탕을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