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계운 미제스 연구소 대표 주제 : #정치현안 * * * 독재자의 죽음과 '해방'의 신화 지난 28일, 이란의 최고지도자이자 폭압적인 독재자였던 하메네이가 미군과 이스라엘군의 정밀 타격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들과 군 수뇌부 대다수 역시 폭사했다. 보수-국가주의 진영에서는 이를 두고 이란 시민들을 독재로부터 해방시켰다며 환호하고 있다. 이란 시민들 역시 환호하고 있다. 올초에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자유를 갈망하는 이란 시민 7만 명을 학살했던 최악의 독재자 하메네이의 죽음을 이란 시민들이 반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냉정한 현실은 축제와는 거리가 멀다. 하메네이와 그 후계자는 제거되었지만, 여전히 알리 라리자니를 비롯한 국가안보회의 주류 세력이 실권을 장악한 채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이것을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필자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리버테리언 외교정책의 관점에서 현재의 참수작전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리버테리언 외교정책의 도덕적·경제적 원칙 리버테리어니즘의 외교정책은 명분과 관계없이 전쟁을 '국가가 행하는 최고의 범죄'로 규정하고 반대한다. 머레이 라스바드는 그의 저서 『새로운 자유를 찾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정치적 ‘고립주의’와 평화로운 공존, 즉 타국에 대한 행위를 자제하는 것이 국내정치에서 자유방임 정책 운동을 펼치는 것에 상응하는 리버테리어니즘 입장이다. 우리가 내정에서 정부를 옭아매듯이 우리의 정부가 외국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옭아맨다는 발상이다. 고립주의 또는 평화공존은 내정에서 정부에 극도의 제한을 가하는 것에 상응하는 외교정책이다. (423P) 이러한 불간섭주의는 단순히 톨스토이식 비폭력주의(평화주의)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광범위한 사유재산권 침해를 경계하는 것이다. 침략국의 시민은 전비를 위해 더 무거운 세금과 부채를 짊어져야 하며, 방어국 시민은 생명과 재산을 잃는다. 또한 전쟁을 명분으로 강화되는 국가의 통제는 시장 질서를 파괴한다. 즉, 전쟁은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용납될 수 없는 국가의 폭력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참수작전'과 그 실상 트럼프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었다. 이런 입장때문에 지상군 파병 옵션은 극도로 꺼린 것으로 보인다. 대신 공군력과 해군력을 동원해 지도부만 타격하는 이른바 '외과수술식 참수작전'을 택했다. 올해 1월 마두로를 시작으로 하메네이에 이르기까지, 최소한의 비용으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이 계산은 과연 성공적이었는가?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보자. 마두로 생포 작전 이후에도 베네수엘라는 여전히 권위주의 정부하에 있으며, 시민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인권운동가 라파엘 우스카테기의 증언에 따르면, 마두로의 몰락에 기뻐했다는 이유만으로 100여 명의 시민이 투옥되었다. 또한 '외세의 자국 공격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소될 수 있다’는 악법이 제정되었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게슈타포들은 이웃들이 무엇을 하는지 염탐하고 채팅방과 SNS를 들여다볼 정도로 국가의 감시와 통제는 더욱 교묘해졌다. 경제적으로는 어떠한가? 미 정부의 요구로 석유 국유화는 폐지되었고 외자유치를 위한 투자법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는 진정한 자유시장이 아닌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정실자본주의란 정부와 특정 기업이 결탁하여 그 혜택이 특정기업에게만 가는 경제시스템이다. 정부와 결탁한 특정 기업들만 혜택을 입는 시스템은 양극화와 정치적 부패를 가속화할 뿐이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에 자유를!”이라는 명분은 허울 좋은 구실에 불과하다. 이란의 미래와 미국 외교정책의 잔혹한 이중성 이란 역시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전쟁에 패배한 임시 정권이 미국 정부의 압력에 따라 핵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일부 개방에 나설지라도, 폭압적인 신정 정치체제는 지속될 것이며 사유재산권 침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냉전기 미국 정부가 아시아와 남미에서 보여준 지독한 이중성을 상기해야 한다. 1953년 이란의 민주 정권을 무너뜨리고 팔레비 샤의 독재를 세웠던 '아약스 작전', 칠레의 피노체트나 필리핀의 마르코스, 한국의 전두환 같은 잔혹한 독재자들을 '우방'이라는 명목으로 비호했던 역사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미국 정부의 목적은 타국 국민의 '자유'가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순응하는 '통제 가능한 권위주의'를 구축하는 데 있다. 이는 결국 라스바드가 『국가의 해부』에서 지적한 국가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국가는 사유재산의 약탈을 위해 합법적이고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약탈의 경로를 구축하고 사회의 기생 계층의 생명줄을 확실하고, 안전하며, 상대적으로 '평온하게' 보장한다." (24P) 이런 관점에서 트럼프의 참수작전은 미국 납세자들뿐만 아니라 자국 군인들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비록 외과수술식 타격이라 할지라도, 오늘(2일) 미 중부사령부는 이 과정에서 미군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항공모함 전단 운용과 미사일 소모에 들어가는 막대한 경제적 비용에 더해, 이제는 무고한 젊은이들의 생명까지 본토 방어가 아닌 타국의 내정 간섭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본토 방어라는 명분으로 갈취한 시민들의 재산과 그들의 고귀한 생명을 약속하지 않은 용처에 낭비함으로써 스스로의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결론: 자유(Liberty)는 배달되는 것이 아니다. 보수-국가주의자들은 "그렇다면 폭압 정권의 학살을 방관하란 말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구하기 위해 무고한 타국 납세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 리버테리언 외교정책의 핵심은 정부 권력의 확장을 억제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악은 그 나라 국민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천부적 자유를 의미하는 'Freedom'과 달리, 'Liberty'는 시민들이 스스로 정부라는 악에 맞서 싸움으로써 쟁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압제 속에 신음하는 이들을 정말로 돕고 싶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닌 민간 차원의 자발적 연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발적인 민간 무장단체가 압제에 저항하는 타국 시민을 돕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며, 오히려 자유주의적인 결사로 볼 수 있다. 한 국가가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제국주의적 참수작전은 결코 자유의 씨앗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이 거대한 광기가 어디서 멈출지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해야 한다. * * * 썸네일 출처 : Gemini
트럼프 행정부의 참수작전과 리버테리언 외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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