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derick Long *로데릭 롱(Roderick Long)은 그리스 철학, 도덕철학 및 윤리학, 사회과학의 철학, 정치철학 등을 연구하는 오번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코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국가없는사회 센터(C4SS) 선임 연구원, 몰리나리 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며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리버테리언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주제 : #자유주의일반 원문 : Wild Card(게재일 : 2009년 9월 10일 ) 번역 : 김경훈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 * * 『과학 혁명의 구조』 (미덕도 결점도 모두 큰 책이지만, 지금 여기서 그 장단점을 논할 생각은 없다)에서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리버테리언들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실험을 하나 소개한다. “심리학계 밖에서 훨씬 더 널리 알려져야 마땅한 브루너와 포스트먼의 1949년을 소개하고 싶다. 그들은 피험자들에게 잠깐 동안 여러 장의 카드패를 보게 했다. 카드들 중 많은 것은 정상적이었지만, 일부는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졌다. 예컨대 스페이드 6의 색깔을 빨강으로 칠하고, 하트 4는 검정색이었다. 한 차례 실험은 한 사람에게 카드 한 장씩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점차로 횟수를 늘려 보여주었다. 매번 패를 보여 줄 때마다 실험 대상자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고, 연달아 두 번을 옳게 맞추는 경우 한 차례가 종료되는 식이었다. 아주 잠깐 보는 것으로도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거의 모든 카드를 알아보았고, 좀 더 늘린 결과 피실험자들은 카드를 모두 알아보았다. 이것의 과정에 있어서는 정상적인 카드에 대해서는 보통 옳게 맞추었으나, 이상한 카드는 거의 예외 없이, 외관적인 망설임이나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정상적인 카드로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하트 검정색 4는 스페이드 4 또는 4라고 대답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것은 기존의 경험이 마련해 준 개념적 범주 중 하나에 즉각적으로 들어맞았던 것이다. 피실험자들은 자기들이 대답했던 것과는 다른 카드를 보았다고는 아무도 말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상한 카드를 점점 자주 보여줌에 따라, 피실험자는 망설이기 시작했고 이상의 감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빨강 스페이드 6을 여러 번 보여주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스페이드 6인데,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 걸, 검정색에 붉은 테두리가 둘렸나.” 더 자주 보여 주는 것은 보다 오랜 망설임과 혼돈을 초래하다가 드디어 어느 시점에서, 때로는 아주 갑자기, 대부분의 피실험자가 망설이지 않고 제대로 맞추게 되었다. 더욱이 이상스런 카드를 두세 개 써서 이런 실험을 한 후에는, 그들은 다른 이상한 카드에 대해 더 이상 별로 어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그들 범주에 제대로 적응해 내지를 못했다. 정상 카드를 옳게 알아맞출 수 있는 데 필요했던 평균치보다 40배나 더 카드를 접하면서도, 이상한 카드의 10% 이상이 제대로 맞춰지지 못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확립된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것을 인식하는 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종종 강한 혐오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보기에, 우리 리버테리언이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렇게도 큰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주류 정치의 장에서 우리는 검은 하트와 빨간 스페이드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처음에는 우리를 어떤 익숙한 범주에 집어넣으려 한다. 우리가 자유시장(의 미덕)과 정부(의 악)에 대해 그렇게 많이 말하니, 비슷한 소리를 내는 보수주의자들과 한데 묶이는 경향이 있다. 더 오래 접하다 보면 우리가 사실 보수주의자는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우리가 빨간 테두리가 둘린 검은 스페이드(어떤 사안에서는 보수, 다른 사안에서는 진보인 회색분자)라고 믿게 되는 경향이 있다. 즉, 기존 이데올로기에 대한 급진적 대안을 제시한다기보다 그 둘을 섞어놓은 것으로 오인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여기서 얻는 교훈은, 리버테리언들은 일단 우리의 입장이 ‘인식’되도록 하는 데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인식되게 하는 것만으로는 물론 충분치 않다(그다음에는 그 입장이 옳다는 점을 논증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가 옹호하려는 입장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런 논증과 변호는 상당 부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중대한 과제는, 다음과 같은 명제들을 포함하는 입장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 대기업과 큰 정부는 (대체로) 자연스럽게 동맹을 맺는다. * 보수 정치인들은 큰 정부를 싫어하는 척을 하고, 진보 정치인들은 대기업을 싫어하는 척을 하지만, 진보든 보수든 주류 정책의 대부분은, 서민들의 희생을 대가로, 대기업/큰 정부 엘리트를 위해 (서로 약간씩 다른 버전의) 대규모 간섭을 수행한다. * 진보 정치인들은 강자를 위한 간섭을 약자를 위한 간섭이라는 수사로 포장하고, 보수 정치인들은 강자를 위한 간섭을 불간섭과 자유시장이라는 수사로 포장한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수사는 현실에 의해 거짓으로 드러난다. * 만약 진보 정치인들이 실제로 약자를 위한 진정한 간섭 정책을 시도한다 해도, 그것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 권력의 성질상, 그러한 정책은 자동적으로 엘리트의 이익을 향해 왜곡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이 실제로 불간섭과 자유시장의 진정한 정책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작동할 것이다. 자유 경쟁은 엘리트의 이익을 침해하지만 서민들에게는 힘을 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보수 정책이 자유시장에 대한 찬미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자유시장 정책과 정반대이므로, 보수 정책의 실패는 자유시장 정책에 대한 반박이 되지 않는다(오히려 있다면 자유시장 정책의 정당화가 된다). 물론 우리는 경제학적 추론과 역사적 증거를 통해 이러한 명제들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의 주된 목표는, 내가 보기에, 그것들을 방어하는 것보다는 그것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 그 자체다. 우리의 빨간 스페이드와 검은 하트를 지적 풍경 속에 충분히 익숙한 요소로 만들어 사람들이 그것들을 오인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것들을 더 잘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6번 항목은 이미 단순히 존재를 알리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입장을 변호하는 것으로 살짝 넘어간다. 그래도, 우리의 입장이 최소한 경청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6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제안하는 것은, (1번부터 6번까지의 동등한 요지에 해당하는) 내용을 우리의 선전 활동 곳곳에서 꾸준히 반복적으로 제시하자는 것이다. 대화에서, 글에서, 독자투고에서, 우리는 1번부터 6번까지의 요점을 거듭거듭 강조해야 한다. 낯선 것에 대한 저항을 치유하는 방법은 그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 * * 썸네일 출처 : GEMINI
리버테리어니즘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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