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e37cbe0ea27a8223993.jpg Stephan Kinsella 스테판 킨젤라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활동하는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이자 자유주의 사상가이다. 자유주의 학술저널 <Libertarian Papers&gt;의 창립자 겸 편집자이며 ‘혁신자유연구센터’의 소장이다. 이외에도 자유주의와 아나코-캐피탈리즘을 연구하고 홍보하기 위해 미제스 연구소, 몰리나리 연구소 등 각종 기관에서 활약하고 있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거장 한스-헤르만 호페의 가장 뛰어난 제자이자 공인된 호페 전문가로도 유명한 그는 미제스, 라스바드, 호페 등 선대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통찰을 바탕으로 하여 자유주의 법학을 개척한 선구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주제 : #건강 원문 : Abortion: A Radically Decentralist Approach (게재일 : 2024년 9월 22일) 번역 : 김경훈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 본 글은 킨셀라가 2024년 재산과 자유협회(PFS) 연례 회의에서 발표한 연설이다. * * * 아나키즘이나 지식재산권처럼 리버테리언들이 종종 합의점을 찾는 주제와 달리, 낙태는 여전히 깊이 분열되어 있고 도전적인 주제로 남아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일반적인 논거들과 리버테리언 관점들을 살펴보고, 이 난해한 이슈에 대한 관할권 접근법(jurisdictional approach)을 제안하겠다. 낙태는 종교적, 철학적, 개인적 신념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특히 어려운 논쟁거리이다. 리버테리언들이 종종 의견을 같이하는 세금이나 전쟁 같은 이슈와 달리, 낙태는 쉬운 답을 찾을 수 없다. 모두가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나 자신의 견해도 시간이 지나며 변화했다. 나는 한때 태아를 "그저 세포 덩어리"라며 일축하는 확고한 선택 옹호(pro-choice) 입장이었다. 하지만 부모가 되면서 생**명 옹호(Pro-Life**) 논거에 더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양쪽 모두에 대해 비판적인 탈중앙화(decentralist) 입장에 도달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리버테리언, 특히 객관주의자들은 선택 옹호 쪽으로 기울었다. 예를 들어 아인 랜드는 "세포 덩어리"는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물론 그녀도 임신 후기 단계의 윤리적 복잡성은 받아들였다. 그러나 생명 옹호를 지지한 예외도 있었는데, '생명을 위한 리버테리언들(Libertarians for Life, L4L)'을 설립한 도리스 고든(Doris Gordon)이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이들이 더 보수적으로 변했고, 종교에 더 우호적이며, 과거보다 낙태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진 듯하다. 자유당(LP)은 2022년 리노 전당대회에서 미제스 코커스(Mises Caucus)가 주도한 "리노 리셋(Reno Reset)"의 일환으로 선택 옹호 강령을 삭제했다. 그들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며 각 후보가 자신의 입장을 채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인 낙태 논쟁 선택 옹호 선택 옹호 논거는 종종 신체적 자율성에 집중한다. 내 몸이니 정부는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아의 존재는 낙태 문제를 오직 여성의 신체에 관한 것만은 아니게 만드므로 단순하게 일축하기란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선택 옹호자조차 출산 직전까지의 합법화는 지지하지 않는다. 예컨대 선택 옹호자인 랜드는 낙태가 도덕적 권리이며, 이는 전적으로 여성의 재량에 맡겨져야 한다"(“Of Living Death,” The Objectivist, Oct. 1968, 6)고 주장했지만 오직 첫 3개월 동안만 완전한 재량권에 있고 임신 후기 단계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생명 옹호 생명 옹호 논거는 생명이 수정 순간부터 시작되며 태아에게 완전한 인권을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완전히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주장이고,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신앙 기반 전제에 의존하기 때문에 세속주의를 가정해야 하는 논쟁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영혼, 생명, 권리 등에 대해 각기 다른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버테리언 낙태 논쟁 생명 옹호 L4L의 도리스 고든은 랜드주의자였지만 낙태에 반대하는 세속적 논거를 제시했다. 고든은 태아가 인간으로서 권리를 소유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견해가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어떤 점이 권리를 발생시키며, 왜 태아는 성인 인간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그 특징을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보는가? 이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피곤한 의미론적 논쟁으로 귀결된다. "인간임(being human)"을 권리의 기준으로 삼는 그녀의 주장은 비인간의 권리, 예를 들어 지적 외계인의 권리, 동물의 권리 같은 문제에서는 적절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선택 옹호 주목할 만한 리버테리언 관점 하나는 월터 블락의 "퇴거주의(evictionism)"다. 블락은 태아가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지지만 동시에 산모 신체의 "침입자"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산모는 태아를 "퇴거"시킬 수 있으며, 현재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그 결과가 죽음이라 할지라도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미래에 기술이 발전하여 산모가 태아를 죽이지 않고 제거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그녀는 그렇게 해야만 하고 태아를 죽이는 것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 견해는 생명 옹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낙태를 정당화하여 실제로는 선택 옹호가 된다. 블록은 왜 태아가 초대받지 않았는지에 대해 복잡한 논거를 대지만, 나는 태아가 초대받았으므로 침입자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블락의 주장은 대부분의 임신이 침입이 아니라 자발적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흔들린다. 수정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태아는 "초대받을" 수 없다는 그의 답변은 억지스럽고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여기에 더해 블락의 기본 논거는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태아가 첫날부터 살아있는 인간이며, 종(species)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속한 모든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Walter Block & Roy Whitehead, 2005) 이는 도리스 고든의 논거처럼 의미론적이기 때문에 인간 본성(human nature)의 무엇이 권리를 발생시키는지를 무시한다는 문제를 공유한다. 단지 "인간 유전자"라는 이유로 특정한 권리를 갖는다는 주장은 너무나도 허약하다. 마지막으로, 최근 블락과 자발적 노예제에 대해 토론했을 때(KOL442), 블락은 부부가 대리모에게 돈을 지불하고 아이를 갖게 할 경우, 대리모가 자신의 신체 일부를 팔았으므로 그녀가 낙태하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남편도 아내에게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여성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노예화하는 경우에만 낙태가 금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여러분이 판단하길 바란다. 그 외 다른 논거들: * Sharon Presley and Robert Cooke, “The Right to Abortion: A Libertarian Defense” (낙태할 권리: 한 리버테리언의 옹호) (2003?) * Doug Bandow, “Abortion: No Libertarian Triumph” (낙태: 리버테리언의 승리가 아님) (2007) * 라스바드(Rothbard): Robert M. Whaples의 코멘트 참조 (The Independent Review 2024년 봄호). * "이 관점의 단점은 낙태에 대한 그의 논의에서 더욱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만약 우리가 태아를 인간과 동일한 권리를 가진 것으로 대우한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의 신체 내에 원치 않는 기생충으로서, 초대받지 않은 채(unbidden) 머물 권리가 있는가?' (121). 폭압적인 강제 정부는 기생충이고, 이제 방어 능력이 없는 태아도 같은 범주에 놓인다. 이 문장에서 결정적인 단어는 초대받지 않은(unbidden)이다.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기생충은 확실히 '초대받지 않은' 것이지만, 아기를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많은 독자에게 변태적이거나 그보다 더 나쁘게 보일 것이다. 태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거의 모든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의 행동에 의해 존재하도록 '초대받았다(bidden)'. 좋게 말해도, 이것은 '무해(no harm)' 원칙에 대한 라스바드 사상의 주요 사각지대이다." 나의 견해 나는 원래 선택 옹호 입장이었으나 아버지가 된 지금은 그렇게 냉담하지 않으며, 태아가 발달할수록 낙태는 점점 더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견해는 호페의 논증윤리에서 설명된 것처럼, 권리가 우리의 이성 및 논증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권리는 이성의 점유(possession of reason)논증 능력(capacity to argue)에서 발생하는 지위(status)다. 권리는 "인간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성인 인간이 공유하는 본성인 '이성'을 갖는 것에서 나온다. 이 접근법은 우주 외계인이나 다른 동물과 같은 다른 지적 종의 경우도 다룰 수 있으면서도 인간을 다른 지각없는 동물과 구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성인 인간은 이 능력 덕분에 권리를 소유한다. 태어난 아이들도 분명히 인권을 가진다. 여기서 호페를 인용해보자면, "...생산에서 비롯된 소유권은 생산된 것이 그 자체로 또 다른 행위자-생산자(actor-producer)일 때, 즉 아이들의 경우에만 자연적 한계를 맞는다. 자연권 재산 이론에 따르면, 아이는 일단 태어나면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자기 신체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태아는 권리에 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는 "연속성 문제(continuum issue)"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연속 어딘가에 선을 그어야만 임신 후기 낙태 같은 행위를 범죄로 간주할 수 있다. 임신이 진행됨에 따라 태아는 발달하고, 유아기에는 권리가 부인할 수 없게 된다. 내 견해로는, 임신 초기 태아는 이성을 발달시킬 잠재력만 가지고 있으므로 권리가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임신 후기 태아는 아기와 유사하며 따라서 아기가 갖는 권리는 무엇이든 갖는다. 임신 후기 태아가 권리를 갖는 한, 이는 그들이 블록의 주장과 달리 침입자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들은 오히려 초대받은 존재다. 부모로서 나는 사소한 이유로 행해지는 임신 초기 낙태가 점점 더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불법이어야 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도덕적 문제와 법적 문제는 갈라지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의무에 초점을 맞추는 리버테리언의 소극적 권리 개념은 이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적극적 의무(Positive Obligations)**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자발적 행위에서 적극적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 견해로는, 리버테리어니즘은 "적극적 의무"나 적극적 권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택하지 않은 적극적 의무만을 반대한다. 내가 쓴 자유 사회의 법적 기초(Legal Foundations of a Free Society) (2023), 2, 4, 23장; “Objectivists on Positive Parental Obligations and Abortion,” The Libertarian Standard (2011)를 참고하라. 호수에 빠진 사람을 보았을 때 당신은 그를 구조할 법적인 적극적 의무가 없다(도덕적 의무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누군가를 호수로 밀었다면, 당신의 행동이 그들의 위험과 필요 상황을 초래했으므로 구조할 적극적 의무가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아기들본래 무력하며, 부모는 출산을 통해 이러한 필요와 의존 상황을 창출했다. 그렇다면, 만약 그리고 태아가 권리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이 되면, 우리는 부모의 의무 중 하나는 태아를 죽이지 않는 것이고 부양과 같은 적극적 의무를 가지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대륙법 체계의 유류분**(forced heirship) 원칙과 유사하다. 공동체나 국가보다는 부모가 자녀를 부양하도록 요구받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따라서 내 견해로는, 임신 후기 낙태가 유아 살해와 매우 유사하거나 동등하다는 강력한 주장이 가능하다. 난해함과 임신의 고유한 지위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러한 결론은 임신 후기 낙태가 범죄로 취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과연 그럴까? 생명 옹호와 선택 옹호 모두 그럴 듯한 논거가 있지만 결국 상대방을 설득시키지는 못한다. 나의 이성 기반 논거 역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것이다. 따라서 안타깝게도 나의 견해조차 낙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없다. 우리는 낙태를 살인이나 유아 살해와 같은 범죄로 취급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태어난 아기는 독립된 인격체이며 다른 태어난 인간을 보호하는 것과 동일한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반면 태아는 어머니에게 완전히 의존적이며 아직 도덕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다. "태아, 아이, 또는 정신적 무능력자를 위해 주장되는 권리는... 전혀 주장되지 않으려면 몰라도, 반드시 타인에 의해 그들을 대신하여 강력히 주장되어야 한다." (Lomasky, p6) 여기서 로마스키(Loren Lomasky)를 더 인용해보자면, "나는 다가적인(multivalent) 기본권 접근을 제시할 것이다... 대부분의, 그러나 전부는 아닌 성인 인간은 프로젝트 수행자(project pursuers)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과 다른 프로젝트 수행자들에게 권리 보유자 지위를 부여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 수행자만이 권리 보유자인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은 다른 이들도 그 지위를 누린다. 그들은 프로젝트 수행자들과 맺는 사회적 관계 덕분에 그렇게 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프로젝트 수행자들에게 업혀 간다(piggyback)." (Lomasky, Persons, Rights, and the Moral Community, p. 40) "출생은 인간 식별 가능성에 있어 비약적인 도약을 의미한다... 타인에게 인식 가능한 개인으로 구성되는 사회적 관계 참여는 출생 시 극적인 전환을 맞는다... 출생은 익명성에서 공적 지위로의 이행이다... 출생은 어떤 내부적 속성이 아니라 외부적 관계에 있어서의 급격한 변화를 표시한다. 그것은 부드러운 곡선을 끊는 단 하나의 거대한 불연속점이다. 따라서 그것은 도덕 공동체 멤버십의 시작을 구성하는 표시된 경계점으로 두드러진다." (p. 197–98) "법과 일반 도덕 모두 출생을 중추적인 도덕적 사건으로 인식한다. 비록 역사적으로 낙태가 일부 지역에서 범죄로 간주되긴 했지만, 거의 언제나 유아 살해와는 다른 범죄로 여겨졌다." (p. 198) 이 모든 것은 법 체계가 사회 구성원, 특히 법과 사법 체계를 만들지도 집행하지도 않는 의존적인 존재에게 보호를 확장할 때, 그렇게 할 좋은 이유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동으로 보호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유아 살해를 단속하는 것은 일반 살인을 단속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태아 살해나 낙태를 단속하려면 거대한 사생활 및 감시 침해가 필요할 것이다. 만약 여성이 집에만 머물며 은둔한다면 외부인들이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건강이 나쁘거나 식습관이 나빠서 유산한 경우 그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유산했다"고 말했는데 낙태법으로 체포된다면? 아직 독립된 존재가 되지 않았고 도덕 공동체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은 태어나지 않은 인간을 단속하는 것이 법의 목적일까? 탈중앙화 접근법 (The Decentralist Approach) 낙태 논쟁의 난해함을 고려할 때, 나는 호페의 통찰에서 영감을 받은 관할권 접근법 또는 탈중앙화 접근법을 제안한다. 어떤 법 체계든 오직 제한된 관할권만을 가진다. * 미국은 중국의 낙태 정책에 대한 관할권이 없다. * 텍사스는 캘리포니아의 낙태 정책에 대한 관할권이 없다. * 사적 법(private law, 아나코캐피탈리즘) 체계조차 제한된 관할권을 가진다. 전 세계가 아닌 해당 지역에 국한된다. 낙태 문제의 난해함, 아직 도덕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태아의 고유한 지위,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의존성, 산모와 가족이 직면한 고유한 상황과 그들의 친밀한 역할, "연속성 문제" 결정의 어려움, 그리고 이를 둘러싼 신념의 다양성 때문에 낙태에 대한 보편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를 강요하는 것은 권위주의의 위험이 있다. 명백하고 최선의 해결책은, 텍사스가 캘리포니아나 튀르키예의 낙태법에 대해 발언권이 없는 것처럼, 국가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가족의 결정에 대해 발언권이 없어야 한다. 오직 어머니와 그녀의 가족만이 이 문제에 대한 관할권을 갖는다. 일단 태어나면 아이는 살인 및 유아 살해 법의 적용을 받지만, 그전에는 외부 법 체계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이 접근법은 임신의 사적인 본질을 존중하고 침해적인 단속을 피한다. 예를 들어, 임신 후기 낙태를 살인으로 간주한다면, 그러한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임신이 은폐될 수 있기에 침해적인 감시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흡연이나 헛디딤 같은 부주의로 인한 유산에 대해 산모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임산부에게 부당한 짐을 지우는 일일 것이다. 만약 가족이 낙태를 허용하고 "불법화"하지 않는다면, 텍사스인들이 중국의 내정에 간섭할 권한이 없고 그들의 일이 아님에도 중국의 낙태법을 비판할 수 있는 것처럼 비판받을 수는 있다. 가족이 이러한 문제를 결정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낙태가 "괜찮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것이 다른 누구의 일도 아니며, 국가든 사적 법 체계든 외부 법 체계나 공동체의 관할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낙태를 금지하지 않는 가족의 "법 체계"는 비판받고 배척당할 수 있지만, 외부 공동체의 법 체계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는 그에 미칠 관할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 해결책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하겠지만, 이 이슈의 난해한 본성상 누구의 해결책도 그럴 수 없다. 적어도 이 접근법은 가장 탈중앙화되어 있고, 현실 및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MYOB)' 접근법과 가장 양립 가능하다. 호페의 탈중앙화적 접근 나는 거의 30년 동안 이 문제를 고민해 왔다. 나는 아주 오래전 호페가 나에게 이 문제를 다뤄보라고 촉구했던 것을 희미하게 기억한다. 기록을 검토하면서, 나는 그가 나에게 이 일을 촉구했을 뿐만 아니라, 호페의 제안이 나의 해결책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1995년 8월에 이 문제를 두고 호페와 긴 통화를 한 적이 있다. 호페는 최선의 해결책은 정부도 아니고 지역 공동체도 아닌, 가족이 낙태의 적절성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가족이 이러한 일을 판단하는 데 가장 적합하며, 다른 누구의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2011년에 나는 미제스 연구소에서 “호페의 사회 이론”이라는 강연을 했다. 마지막 강의에서 나는 한스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여기서 나는 태아가 발달할수록 낙태는 더 비도덕적이며, 특정 시점부터는 단순한 비도덕을 넘어 침해(aggression)가 된다고 말했다. 선을 정확히 어디에 그을지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임신 후기 낙태에 대한 어떤 법적 금지경찰 국가나 허용될 수 없는 수준의 사생활 침해를 요구할 것이라고도 분명히 지적했다. 따라서 우리가 일부 임신 후기 낙태유아 살해와 동등하다고 말할지라도, 자유 사회에서는 이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본질적으로, 법 체계는 그러한 결정에 대한 "관할권"을 가족 수준 자체에 둘 것이다. 이점에 대해 호페는 다음과 같이 첨언했다. "나는 본질적으로 당신에게 동의하며, 특히 반문(counter-question)을 강조하고 싶다. 설령 도덕적으로 그리고/혹은 법적으로 뭔가 잘못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누가 산모를 추궁할 자격이 있는가? 피해자는 누구인가? 확실히 국가나 '대중'은 아니다." 그해 말, 호페는 루마니아의 미제스 연구소에서 강연했다(2011년 11월 8-11일). 아이들, 낙태, 국가의 역할과 후견권에 대한 질문을 받자, 호페는 낙태가 가족 문제이지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이는 지역 및 외부 사법 공동체조차 관할권이 없다는 나의 견해를 지지함을 시사한다. 이 불간섭 접근법은 국가의 개입보다 개인과 가족의 자율성을 우선시하는 리버테리언 원칙과 일치한다. 나는 호페의 요청을 거진 30년 동안 미루어 왔지만, 이제 그가 내가 최선을 다해 이 문제를 다루었음을 알아주리라 믿는다. 마치며 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고, 12년 동안 가톨릭 학교를 다녔으며, 복사(altar boy)였다. 가톨릭 교도로서 나는 낙태 이슈의 감정적 무게를 이해하지만, 탈중앙화 접근이 최선의 길을 제시한다고 믿는다. 출생 전까지 낙태 결정을 가족에게 맡김으로써, 우리는 다양한 신념을 존중하고, 국가의 월권을 피하며, 임신의 독특한 복잡성을 인정하게 된다. 이 문제를 다루었으니, 이제 나는 비트코인을 자본이득세에서 면제하는 작업으로 관심을 돌리겠다. 아마 더 가벼운 도전이 될 것이다. [역자주:다음은 호페가 쓴 라스바드의 '자유의 윤리'의 서문에서 낙태 관련 내용만 발췌한 것이다.] 낙태를 할 권리라는 것이 아무 곳에서나 낙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사적 소유자나 그 연합체가 물리적 처벌 이외의 모든 수단들을 통해 낙태주의자들(abortionists) 을 차별하고 처벌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게 할 것은 전혀 없다. 모든 가정과 재산 소유자는 자신의 영역에서 낙태를 자유롭게 금지할 수 있고 동일한 목적을 위해 다른 소유자들과 구속적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게다가 모든 소유자와 모든 소유자들의 연합체는 낙태주의자를 자유롭게 해고하거나 고용하지 않을 수 있고, 낙태주의자와는 그 어떤 거래를 하는 것도 거절할 수 있다. 문명화된 장소는 어디에서도 낙태를 할 수 없고 낙태를 하기 위해서는 악명 높은 뒷골목으로 숨어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정말로 있을 수 있다. 그와 같은 상황에 잘못된 것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은 무책임한 성행위의 비용을 높이고 낙태의 수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도덕적일 수 있다. 이와 명백하게 대조적으로, 대법원의 결정은 주정부와 지방정부를 희생하여 자신의 관할권, 즉 연방정부의 관할권을 확장하기 때문에 불법적이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적재산 소유자의 자신의 재산에 관한 정당한 관할권을 희생하여 대법원의, 즉 연방정부의 관할권올 확장하기 때문에 불법적이었고 그 결정은 낙태를 하는 곳을 만들어 내고 가능성을 촉진한다는 점에서도 또한 절대적으로 비도덕적이다. 호페의 2011년 7-8월 의견, 슬라이드 18-19; 유튜브 약 25분경 * * * 썸네일 출처 : GEM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