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vin Carson *케빈 카슨(Kevin Carson)은 C4SS(Center for a Stateless Society, 국가 없는 사회 센터)의 선임 연구원이다. 신자유주의의 오랜 비판자로서 그는 국가와 대기업의 결탁을 날카롭게 비판해왔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전통적인 좌파 아나키즘을 결합한 "좌파 라스바드주의자(Left Rothbardian)"를 자처하는 카슨은 좌파들의 목표(평등, 자유, 빈부격차 해소 등)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폐지하고 자유시장 아나키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제 : #사유재산 원문 : https://c4ss.org/content/20644 (게재일 : 2013년 8월 5일) 번역 : 김경훈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 * * “자유시장 개혁”을 위해 국가를 상대로 로비하는 것을 즐기는 기득권 리버테리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민영화”다. 뷰케이트(Paul Buchheit)는 ruth-out.com에 기고한 글 “민영화가 미국을 망친 여덟 가지 방식”에서 민영화의 실패가 곧 자유시장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수도, 전기, 교도소, 그리고 “의료민영화” 등 그가 언급하는 민영화 실패 사례들은 단지 기업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금전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자유시장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국가의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국가가 본질적으로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의 강제 수단으로 바라본다. 부를 얻는 경제적 수단들, 예컨대 생산, 평화적 교환, 자발적 협동, 나눔과 증여 등은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 반면에 국가는 부를 얻는 정치적 수단이다. 지배계급은 폭력을 이용해 다른 모든 이로부터 이익을 착취한다. 과거에는 왕, 귀족, 성직자들이 농민들로부터 공물을 짜내기 위해 국가를 활용했다. 중세 시대의 국가가 주로 지주 계급의 착취도구였다면, 초기 자본주의의 국가는 대지주와 전제 군주 외에도 상인, 광산업자, 무기 제조업자 등 신흥 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에도 동원되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산업 자본가들이 국가를 장악한 지배계급의 동맹에 합류했고, 이어서 금융자본가와 “지적 재산권” 소유자들이 뒤따랐다. 국가가 어떤 이념적 외피를 두르든, 그 정책의 일차적 수혜자는 그것을 통제하는 지배계급이다. 이는 진보시대와 뉴딜 시기에도 그러했다. 그 시기에는 포퓰리즘과 친노동을 표방하는 정책들이 다수 등장했지만 그 정치적 배후에는 대기업의 이익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헤리티지 재단, 전미기업연구소, 전미입법교류위원회 등이 밀어붙이는 이른바 “자유시장 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민영화”가 특히 그렇다. 자유시장 개혁가들이 밀어붙이는 민영화의 전형은 이러하다. 납세자의 돈으로 구축한 사회기반시설(인프라)을 국가가 명목상 사기업에 매각한다. 이때 매각 조건은 물밑에서 사실상 그 기업이 정하는데, 보통 다음이 포함된다. (1) 민영화가 수익성을 갖추기 위해 납세자의 혈세를 투자해 인프라를 개선해줄 것(어이없게도 여기에 쓰이는 세금은 민영화를 통해 정부가 얻는 수익보다 많은 경우도 흔하다), (2) 민영화 이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확실한 이윤을 보장하거나 해당 분야에 진입장벽을 세워 경쟁을 제한해줄 것, 그리고 (3) 일단 민영화가 된다면 인프라에서 대규모 자산을 뜯어내서 마음대로 팔아 치울 수 있도록 내버려둘 것. 내가 “소위” 민영화라고 말하는 이유는, 국가의 보호망 속에서 국가가 보장해주는 이윤을 먹고 사는 “민간”기업은 사실상 국가의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가 공무원이 직접 수행하는 “공공 서비스”와 납세자의 돈으로 운영되는 “민간기업”의 유일한 차이는, 후자에는 주주와 기업 경영진이라는 기생충들이 추가되었다는 점뿐이다. 간단하게 실제 예시를 한번 살펴보자. 민간 교도소 업체 코어시빅(CoreCivic)은 국영 교도소를 매입하는 대가로 향후 20년간 수감률 90% 유지를 국가가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상수도 민영화는 모든 비용을 따져본다면 정부가 사실상 기업에게 돈을 얹어 주며 상수도를 상납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프라를 매입한 기업은 떼다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 치운 후 고객들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바가지를 씌운다. 이것이 우파 “자유시장” 싱크탱크들이 부르짖는 “시장개혁”의 실체다. “자유시장”이라는 용어를 사랑하는 그들이 이룩한 유일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우파들이 진짜 “자유시장 개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좌파들이 진짜 친노동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다. 국가를 통해 자유시장을 촉진하거나 착취 피해자들을 도우려는 시도는 망치로 종이접기를 하려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경우, 정부 재산을 민영화하는 유일하게 정당한 방법은 정부에 대한 허튼 신화를 걷어내고 실제로 그 서비스가 제공되는 데 재산을 내놓은 사람들, 또는 그 서비스를 실제로 소비하는 사람들의 재산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 소유의 공장은 노동자들의 협동조합이 되고, 정부 소유의 공공시설은 요금 납부자들의 소비자 협동조합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모델의 민영화를 제안한 마지막 주요 정치인은 소련의 고르바초프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시기적절한 쿠데타로 축출되었고, 그 결과 엘친이 집권했으며, 주류 경제학자 삭스(Jeffrey Sach)가 주도하에 소련 경제는 부패한 관료들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국가가 주도하는 진짜 시장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지 말라. [역자 주: 케빈 카슨의 주장은 라스바드의 1969년 칼럼 「몰수와 전용의 원칙」(Confiscation and the Homestead Principle) 그리고 1992년 논문 「사회주의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How and How Not to Desocialize)에 근거한 것이다. 1969년 칼럼에서 라스바드는 “어떤 토지나 재화가 로크적 의미에서 ‘노동을 섞어서’ 최초로 전용된다면, 다른 사람은 오직 최초의 전용자와의 ‘자발적’, ‘계약적’ 이전을 통해서만 그것의 소유를 취득할 수 있다”는 전용의 원칙에 입각하여 현존하는 부당한 재산들의 처분에 대해 논의한다. 그는 재분배의 전 단계로 부당한 재산을 우선 국유화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고 주장할 정도로 부당하게 획득된 재산을 원래 정당한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리버테리언들에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 그는 주립대학이나 공기업 같은 국가기관은 국가의 부당한 소유권과 통제권을 최대한 빨리 박탈하여 민간인들의 협동조합으로 환원해야 하고, 미국의 흑인노예와 그 후손들이 정당한 배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의 노예제 폐지는 미완으로 남았다고 말한다. 그는 1969년 이후 이러한 입장을 완화하거나 철회하지 않았고, 오히려 1990년대 초 동유럽·구소련의 민영화/전환 문제를 다루면서 원래의 입장을 더 확고하게 고수하였다. 예컨대 1992년 논문에서 그는 ‘국가가 쥐고 있는 도둑맞은 재산’을 해체·환원하고, 정당한 권리자(피해자·사용자)에게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소련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라스바드는 역설적으로 소련이 사회주의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토지는 농민에게, 모든 공장은 노동자에게" 배분하는 오래된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바라보았다. 실제로 라스바드의 견해는 집단 보다 개인을 우선한다는 점 외에는 과거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좌파 아나키스트들이 주장한 국가의 해체 방안과 매우 흡사하다. 탈사회주의는 정부가 보유한 '소유권' 또는 통제권을 박탈하고 이를 민간에게 이양하는 과정이다. 이때 정부의 자산 소유권이 폐지된다면 해당 자산은 즉시 암묵적으로 무소유 상태로 전환되는데, 이 때 해당 자산에 실제로 노동한 투입한 사람들, 즉 농민, 노동자, 경영인들이 우선적으로 권리를 갖는다. 물론 이는 소유권을 집단 또는 전체에게 부여하지는 않고 구성원 개인에게 실제로 양도가능한 지분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사회주의 신디칼리스트 협동조합과는 다르다. 이 글에서 저자가 ‘협동조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나코 캐피탈리즘이 실제로는 전통적인 아나키즘과 완전히 다르지만 언어적 편의를 위해 단순하게 아나키즘이라고 일컫는 것과 같은 편의를 위한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미제스 연구소의 자유주의자들 역시 라스바드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다. 호페는 서독과 동독의 통일과 관련해 공적 재산의 정당한 귀속 방법을 논의하며 라스바드의 견해를 이어받았다. 러시아 출신 경제학자 말체프는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정부의 '민영화'가 공공자산을 사유재산이나 개인소유로 환원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기존 사회주의 체제의 수혜자들에게 이득을 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비판했다. 블락은 흑인 노예제에 대한 배상과 관련하여 라스바드의 1969년 칼럼 접근법을 옹호한다. 킨젤라 역시 이 칼럼이 훗날 호페가 개발한 논증윤리의 원시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라스바드가 쓴 가장 훌륭한 글이라고 평가한다. 미제스 연구소와 경제자유재단(FEE)의 편집자로 재직한 마커스(B.K. Marcus)는 JLS에 기고한 2006년 논문에서 라스바드의 민영화 방법과 다른 제안된 민영화 방법을 비교하며 "국가가 소유한 재산은 원칙상 무주물로 취급해야 하므로 부당한 재산 소유자인 국가가 입찰을 받아 자산을 넘기는 경매 중심의 민영화는 잘못되었고 점유-사용에 기초한 민영화"를 해야 한다는 라스바드의 견해가 가장 효과적이고 건강한 민영화의 방법이라고 논평했다. 다만 미제스 연구소의 대표를 역임했던 다이스트는 이러한 원칙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주립대학 같은 국가기관은 다소 쉽게 문제를 식별하고 몰수 및 분배가 가능하지만, 부당한 재산권 탈취가 수십년에서 수 세기가 지났을 때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더욱이 과거의 잘못을 오늘날 재배분할 때 배상금은 개인 X가 개인 Y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적자예산과 증세로 조달하게 되어 모든 사람이 세금과 인플레이션을 통해 배상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 * * 썸네일 출처 :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