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an McMaken 라이언 맥메이큰은 미제스 연구소의 편집장이다.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콜로라도 주정부에서 10년 동안 주택 담당 경제학자로 근무하였다. 주제 : #보수어용세력_가짜자유주의 원문 : The Problem with Microlibertarianism (게재일: 2024년 4월 25일) 번역 : 박 룻 (미국 초등학교 교사) * * * 내가 아직 대학원생이었던 20대 시절에, 나는 공항에서 미제스 연구소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며 흥미로운 현상을 목도했다. 그것은 바로 작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자유 시장을 옹호하면서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전쟁과 국가 통제를 수용하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현상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일을 기억한다. 아마 나보다는 20년이상 선배가 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같은 연구소 컨퍼런스에 가는 중이었고 일반적인 자유시장에 대한 견해들, 즉 낮은 세금과 정부 규제의 문제점들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론 주제가 외교정책으로 바뀌자, 자유와 국가의 악덕들은 빠르게 잊혀졌다. 급기야 이 남자는 워싱턴 (=미국정부라는 의미로서)의 중미 (Central America) 개입과 이란에게 불법적인 무기를 파는 것까지 찬양했다. 그는 이란-콘트라 사건 (Iran-Contra affair) 을 저지른 네오콘들을 지지했다. 자칭 자유주의자인 그는 레이건 정부 시절, 중동과 중남미에서의 전쟁에 참여하여 불법으로 연방 정부의 돈을 쓴 것이 밝혀진 것에 대해 허탄해 했다. 내가 말하길 불법적으로 대외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제한된” 정부, 무엇보다 입헌 정치에 맞지 않다고 하였을 때 그는 논점은 없고 나이만 많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말투로 그것을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어리다고 하였다. 이제는 그와 같은 나이가 된 나로서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지금까지 많이 만나 보았다. 작고 쉬운 문제들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하지만,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 원칙을 버리는 자유주의자들을 찾기 쉽다. 작은 문제란 무엇이냐? 바로 이런 것이다. 마리화나, 임대료 규제, 매춘, 통근차를 함께 타는 것 등등... 리버테리언 컨퍼런스나 온라인 토론회 장에서 택시 서비스를 규제하는 정부 방안들이나, 임대료를 규제하는 것이나, 돈을 위해서 성관계를 하는—대부분의 경우 가난한—여성들을 감옥에 가두는 일 대해 반대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대개 국가권력에 있어 본질적이지 못한 이슈들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와 그 중심에 있는 권력을 위태롭게 만들지 못한다. 이런 작은 문제들에 있어 정부의 힘을 약화 시키는 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미시자유주의자 (microlibertarian)” 라고 부를 수 있다. 큰 문제들은 다른 이야기이다. 그것들은 더 쟁점이 되는 것들이며 전쟁과 평화, 지정학, 그리고—최근 몇년간 우리가 배운대로—팬데믹 같은 것들이다. 이런 문제들이야 말로 더 핵심적이며 국가와 국가 권력자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들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예를들어 찰스 틸리 (Charles Tilly)가 오래전에 “전쟁이 국가를 만들었고, 국가가 전쟁을 만들었다.” 라고 언급했고, 랄프 보운 (Randolph Bourne)은 “전쟁은 국가의 활력이다.” 라고 언급했다. 머레이 라스바드 (Murray Rothbard)는 전쟁에 관한 쟁점이 자유와 인권을 방어하는 데에 있어 어떤 노력보다도 가장 핵심에 있는가를 설명했다. 더욱이, 최근에 우리는 “팬데믹과 싸운다는” 명목하에 정권들이 많은 경우에 전쟁에나 사용 되었던 선전과 공포에 기반한 전술들을 많이 이용하는 것을 보았다. 전시에 사용된 것과 같은 많은 정책들이 코로나 공포 기간에도 사용되었다. "비상 권한"을 수용하고, "전문가"에게 전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경제 전체 부분에 있어 거의 완전한 국가적 통제를 수용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전시와 마찬가지로 팬데믹 시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적"—그것이 어떤 지어낸 허구의 위협이든지 병이든지—이 우리를 이길 것이기 때문에 국가 권력을 제한 할 수 없다고 말을 하였다.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진정한 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과 자유를 외치는 자유주의자들은 훨씬 적다. 하지만 그런 타협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당인(黨人)은 반드시 존재한다. 우리는 이 작은 수의 자유주의자 집단을 "거시자유주의자 (macrolibertarian)"라고 부를 수 있다. 그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큰 문제들에 관해서도 자유를 수호하는 데 철저하다. 평범한 미시자유주의자는 재빨리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위협"에 맞서기 위해 국가 권력에 굴복한다. 평화로울 때 또는 전염병이 돌지 않을 때만 자유를 수호하는 사람들은 자유 시장이 왜 "이론상" 때때로 작용하는지, 하지만 국익, 공중 보건과 같은 정말 중요한 사안들에 있어 왜 정부의 통제가 필요한지에 대해 기꺼이 설명해 줄 것이다. 예를 들어, 팬데믹의 경우, 일부 미시자유주의자들은 백신 의무화를 수용하기도 했다. 그 일례로, 월터 블락 (Walter Block)은 백신 의무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썼다: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제가 60%의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도록 강요해야까요? 놀라겠지만 나는 그럴 것입니다. 60%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는 가부장주의 (paternalism) 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취약한 40%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60% 중 누구라도 백신 접종을 거부하면, 저는 인구의 40%를 대량 학살하겠다고 위협하는 사람으로 그를 처형할 것입니다." 외교 정책에 관해서는 미시자유주의자들의 상황이 더 나쁘다. 이는 론 폴 (Ron Paul)이 2008년과 2012년 대선 캠페인을 하던 당시 "외교 정책을 제외하고는 론 폴과 동의한다"는 반복적인 말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 감정은 공통된 입장을 표현한 것이다. "나는 국가가 어떤 면에서는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국가 권력의 핵심에 있는 주요 문제에 맞서는 데는 관심이 없다." 당연하게도, 역사적으로 정권이 대중을 전쟁에 열광하도록 몰아넣을 때마다 자유주의 이념의 인기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가장 두드러진 예로, 최근에 일어난 9/11 사건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에 냉전 이후,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 국가가 어떤 다른 외국 집단보다 그들에게 훨씬 더 큰 위협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수년 동안 정부를 반대하는 감정을 키워오고 있었다. 그러나9/11 이후, "작은 정부"를 옹호한다고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이유없이 감시하고 고문하는 것과 끝나지 않는 전쟁 등을 수용하게 되면서 자유주의적 생각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국가의 가자지구에 대한 전쟁에서 비슷한 현상을 본다. CATO 연구소의 미시자유주의자들은 테드 갈렌 카펜터 (Ted Galen Carpenter) 가 NATO와 러시아 간의 영구적인 전쟁에 대해 충분히 열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해고했다.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앞장서는 미시자유주의자 블락은 "영웅적 총리 네타냐후"가 가자지구의 여성과 어린이를 "분쇄"하려는 노력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것을 독려했다. 이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스라엘 국가에 한계란 존재하는가? 강력한 국가적 행동으로 "위협"을 근절해야 하는 이들에게 그 한계란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것을 보면 우리는 미시자유주의적 입장이 실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본다. 국가 권력에 대한 제한은 작은 문제에만 효력을 발하고 큰 문제에는 효력을 발하지 않게 해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국가 권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통치권과 특권들—즉 일반인의 생명과 자유에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법적 권한–은 무상 통행권을 얻는 셈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틀림없이 임대료 통제와 마약 전쟁, 그리고 국가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고 통제하는 수많은 방법을 비난하는 것은 좋으며, 중요하다. 나는 이런 주제에 대해 많은 글을 썼고 미제스 홈페이지 (mises.org)에 이 주제에 대한 많은 기사를 게시했다. 라스바드는 이런 주제를 절대 무시하지 않았다. 반면에, 임대료 통제는 반대하면서 10만 명의 민간인 대량 학살을 지지하는 것은 단순히 사소한 "맹점"을 가지고 있다라고 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모순이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국가의 아픈 곳을 때리는 일을 거부하는 것이다. 살인적이고 독재적인 국가의 권력 행사는 “비상 사태”시에는 사용해도 된다며 근본적으로 안주해버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흔한 입장이며, 의도가 좋은 많은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국가와 그 권력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반대해야 할 때 사실상 중립적이게 되어 버리고 만다. * * * 썸네일 출처 : https://newideal.aynrand.org/libertarianism-big-tent-or-big-mess/
뷔페형 자유주의자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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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an McMa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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