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역사 * *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10월 10일 ‘전후 80년’을 기념해 ‘일본은 왜 전쟁을 피하지 못했는가“라는 내용의 개인 메시지를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무모한 전쟁을 피하지 못했던 이유로 당시 일본 사회 전반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의 분석은 정작 본질을 빠뜨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Mises[note] Mises, Ludwig von, 2007[1957], Theory and History. Auburn, Ala.: Mises Institute, pp. 159-160.[/note]는 “개인의 행동들은 환경을 통해 그가 획득해왔던 이데올로기들에 의해 안내된다”고 지적한다. 일본과 일본 지배 하의 한반도의 이데올로기는 두 지역 지도자들의 이데올로기가 두 지역 전체로 확산되었거나 강요된 경우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때 두 지역 지도자들이란 결국 메이지유신 세력과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일본 군부 지도자들이거나 군인 출신 정치가들을 지칭한다. 그들이 가졌던 가치 또는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결론만 말하면, 메이지유신부터 1945년까지 일본과 식민지 한반도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는 ’군국주의‘(militarism)였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의 이데올로기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메이지 유신 이후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일본 정부는 일본 군부가 중심 세력이었고 그런 일본 군부는 번의 하급 무사들이나 소위 군벌(軍閥)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군국주의자들의 집합소였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을 군국주의화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그러므로 그 기간 일본은 군국주의가 지배하는 국가였다. 그런 군국주의야말로 일본이 태평양전쟁(일본인들은 2차 세계대전을 태평양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을 포함한 무수히 많은 전쟁을 일으켰던 근본적인 원인이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일본이 그런 군국주의 이념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원인을 밝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은 메이지 유신과 그 이후의 역사를 ’문명교체‘ 관점에서 이해하는 일이다. 더 넓게 보면, 조선과 중국도 개항 무렵에는 문명교체를 강요당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일본을 포함한 동양 3국의 역사를 문명교체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 지도자들이 추구한 것은 ’부국강병‘과 ’문명개화‘이다. 그런데 부국강병과 문명개화는 문명교체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었다. 즉 메이지 유신 지도자들은 문명교체를 단행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 질문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문명교체에 얼마나 성공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글에서는 메이지 유신으로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의 기간만을 대상으로 한다. 일본이 청일전쟁과 그 이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사실은 부국강병에는 성공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비록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함으로써 메이지 지도자들이 기대했던 부국강병은 최종적으로는 실패로 끝났지만 알이다. 서양문명의 요체는 ’자유‘이다. 서양문명의 요체를 그렇게 규정하면, 메이지 유신 이후 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 군국주의 이념을 체계로 한 일본은 문명 교체에 실패한 것을 의미한다.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에 ’자유‘는 그 그림자마저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대변되는 문명교체로 초기에는 부국강병에는 성공했지만, 서양문명의 요체인 자유를 문명교체의 최상위에.두는 일에는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패전으로 부국강병도 물거품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일본이 서양문명으로 교체하기 시작했을 때 서양은 제국주의 시대였고 메이지 지도자들과 일본 군부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군국주의를 일본 사회의 이념 체계로 주입했기 때문이다. 서양문명의 요체이면서 자유만큼 중요한 가치는 ’평등‘이다. 신분제 폐지에서 보듯이,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에서의 평등이 메이지 유신 이전보다 크게 개선되었지만 완전한 실현은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신분적 불평등이 실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일본은 문명교체에 얼마나 성공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분석이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 일을 잘 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동양 3국에 필요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진정한 의미의 ’유신‘으로 끝맺고자 한다면 메이지 유신에서 시작된 문명교체의 성공과 실패를 분석하고 지금이라도 실패를 개혁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명교체의 성공으로 메이지 유신을 끝맺어야 할 것이 아닌가? * * * 썸네일 출처 : https://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67
[미제스 코리아 특별칼럼] 군국주의와 문명교체: 일본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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