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역사 * * * 역사 연구에서 집단을 무시하거나 등한시하고 개인을 강조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역사가와 대중은 제3공화국의 경제적 성공이 박정희 대통령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다시 말하면, 역사 연구에서 개인과 집단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와 연관된 질문으로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계획하고, 성취했다.”라는 주장을 평가해 볼 수 있다. 이 질문은 이 글의 말미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첫째, 오직 개인들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역사 연구의 대상은 물론 개인이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모든 개인이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개인들은 보통의 개인들, 비범한 개인들, 위인들 등으로 구분 가능하다. 물론 이 구분이 언제나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개인의 행동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된다는 관점에서 개인이 가진 이데올로기는 역사 연구의 대상 가운데 하나이다. 둘째, 개인 간의 관계, 특히 위인과 평범한 개인 간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역사에서 위인들이 수행했던 역할이 훨씬 더 평범한 것이었다는 데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고 미제스(Mises)는 강조한다. 미제스는 “역사에서 심지어 위인들이 수행했던 역할이 훨씬 더 평범한 것이었다는 데 누구도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다. (중략) 거인은 그의 동시대인들 각각을 능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난장이들의 연합군을 상대할 수 없다.”라고 지적한다. 셋째, 선구자들이나 개척자들은 그가 사는 시대의 아이디어들이나 사상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지만 그들의 업적도 그 중요성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고 미제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천재의 작품마저도 또한 역사적 사건들의 연속 속에 삽입되고, 선행하는 세대들의 업적들에 의해 조건 지어지며, 아이디어들의 진화에서의 단지 한 장(章)이 된다.” 여기에서 서두에서 제기한 첫 번째 질문을 풀어볼 수 있다. 역사가 위인들의 업적인 것처럼 제시하는 것은 역사를 단순화시켜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 진실은 아니라고 미제스는 설명한다. 제3공화국의 경제적 성공이 박정희 대통령 때문이라는 주장은 역사를 단순화시켜 설명을 위한 표현이라면 문제가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문자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제3공화국의 경제사를 정확하게 서술하고자 한다면 당시의 평범한 개인들과 그 집단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 비스마르크가 제2제국을 건설했다거나, 빌헬름 2세가 그 제국을 망하게 했다거나, 히틀러가 제3제국을 건설했고 망하게 했다는 등의 설명은 신중한 역사가라면 아무도 그러한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미제스는 강조한다. 넷째, 집단주의자들은 사회라는 것이 인간과 독립된 실체이고 개인보다 상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실은 사회 그 자체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는 인간 행동의 한 측면이다. 그러므로 사회를 인간 행동의 외부 또는 상위에 있는 독립된 실체인 양 다루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미제스는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역사 연구에서 다양한 집단을 다루기 위해서는 그 집단에 속한 개인들의 행동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집단을 인식할 유일한 길은 그 구성원들의 행위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미제스는 강조한다. 그러므로 미제스는 “역사학의 주된 임무는 개인들의 행동들과 사건들의 진행 관계를 적시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다섯째, 개인들이 가진 아이디어들과 개인들이 한 행동들이 역사 연구에서 ‘궁극적 여건’이다. 이 점을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에 응용해보자. 박정희가 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는가 하는 의문을 푸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박정희가 가진 사상들과 가치판단들과 그에 따른 그의 행동들이 역사 연구에서 궁극적 기정사실이다. 박정희가 왜 ‘10월 유신’을 단행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서도 전자와 동일한 말을 할 수 있다. 이 칼럼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 글의 서두에서 제기한 두 번째 의문, 즉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계획하고, 성취했다.”라는 주장을 평가해 볼 수 있다. 경제성장이 경제 역사로서 역사의 일부라면,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계획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경제성과, 즉 경제 역사는 계획된 결과가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모든’ 경제 역사를 국가 계획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틀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 썸네일 출처 :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