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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an McMaken 라이언 맥메이큰은 미제스 연구소의 편집장이다.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콜로라도 주정부에서 10년 동안 주택 담당 경제학자로 근무하였다.

주제 : #보호주의와_자유무역 원문 : When Conservatives Denounced Freedom as “Unpatriotic” (게재일: 2019년 10월 14일) 번역 : 한창헌 (한국 미제스 연구소 연구원)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를 지지하는 좌파 사회주의자뿐만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지지하는 우파 보호주의자들 역시 경제적 자유를 공격하는 데 여념이 없다.

지난주에 언급했던 것처럼 최근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미국인들의 자유를 공격하는 데 특히 열정적이다. 실제로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의 자유가 너무나도 과도하며, 이로 인해 중산층이 파괴되고 있고 부유층의 의한 빈곤층의 착취가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시점에서 가장 흔하게 비판받는 대상이 바로 '리버테리언'이다. 여기서 리버테리언이란 아주 모호하게 정의되곤 하지만, 대체로 수입품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국민 소득의 35퍼센트를 떼어가며, 통화 공급을 팽창시킴으로써 미국 정부가 우리를 더 잘 살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데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부분에 있어서 보호주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국가의 전례 없는 재정 적자와 생산적인 미국인들에게 부과되는 가혹한 세금 및 규제 부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법이 없다. 결국에 그들의 머릿속에서 19세기부터 20세기 초 미국이 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보호주의의 덕분이었으며, 이른바 '아메리칸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높은 세율, 대규모 정부 보조금, 더 강력한 관료주의의 덕분이었다.[note] 존 버트카(https://threader.app/thread/1177242491336175616)와 대니얼 매카시(https://www.firstthings.com/article/2019/03/a-new-conservative-agenda) 모두 에이브러햄 링컨의 경제정책을 현대 정책의 지침으로 내세웠다. 헨리 클레이의 '아메리칸 시스템'의 제자였던 링컨은 더 큰 과세와 정부 보조금 정책을 통해 미국의 팽창을 지지했다.[/note]

이러한 점에서 보수주의자들은 결코 옳지 않다. 실제로는 정부의 규제가 강해지고 세율이 높아지면서 이 나라의 중산층은 생계를 꾸리기 더 어려지고 더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와 경제적 신중함의 영역을 벗어나 또 다른 영역으로까지 팔을 뻗고 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매국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자유가 사회를 파괴하고 있으며, "국가"를 위해 옳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간섭하여 모든 사람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는 잊어라, 우리에겐 위대한 국가가 필요하다

이 구호는 많은 보수주의자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도 보수주의자들은 경제학이 기술 관료들을 위한 영혼 없는 도그마일뿐이라고 조롱하고 비난해왔다.[note] 예를 들어 패트릭 뷰캐넌(Patrick Buchanan)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경제학이란 인간이 순수하게 '경제적 동물'이라는 개념 위에 세워졌다고 주장하면서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허수아비를 내세워 친시장 경제학의 희화화를 조장했다.[/note]뿐만 아니라 경제학이 배부른 자본가들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음모라고 생각하는 좌파들과 마찬가지로, 보호주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에 대한 리버테리언의 옹호가 국가에 반하는 음모이며 '애국심'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존 버트카(John Burtka)는 『아메리칸 컨서버티브』(The American Conservative)에 다음과 같은 기고문을 실었다.

리버테리언의 전략은 명백하다. 모든 정책의 목표는 아무런 제약도 없는 글로벌 시장의 창출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다국적 기업들의 이익에 의해 주도되는 노동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다. 이 전략의 결과로 민족국가가 약화되고 궁극적으로 붕괴할 것이며,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제도는 소멸될 것이다. (...) 리버테리언들이 지역, 가족, 신념에 대한 애착의 흔적을 더 빨리 지워 없앨수록 그들이 목표로 하는 제약 없는 세상, 즉 인간도 창조주도 없는 세상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강철 보안문을 생산하는 직원 20명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회사의 이익을 저해할 새로운 철강세 도입에 반대한다면, 당신은 지금 미국을 파괴하려는 기업들의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미국을 사랑하는 기업가라면 당신은 국가를 위해 기꺼이 사업을 접고 본인과 20명의 직원들의 생계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이처럼 낮은 세율이 "민족 국가의 붕괴와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제도의 소멸"로 가는 미끄러운 비탈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버트카뿐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터커 칼슨(Tucker Carlson)은 국가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정치인들이 구상한 계획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자유를 허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자유 방임'(laissez-faire)이라는 매국적인 개념에 더럽혀지지 않는 자유만을 허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칼슨은 '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시장의 자유를 의미하는 암호로 사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일삼는 가장 큰 거짓말은 경제학을 다른 중요한 모든 일과 분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기업가, 사업주, 소비자가 애국심('칼슨'이 말하는 애국심)에 걸맞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한에서는 그들의 자유를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너무나 많은 해외 상품을 구입하거나 해외 경제에 투자하기 시작한다면 그들의 자유는 철회되어야 한다.

'자유는 매국적이다'라는 구호의 간략한 역사

안타깝게도 이러한 입장은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주장해 온 애국주의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사도록 허용하거나 판매자들이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팔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주장들이 실제로 불거졌던 역사적 사례가 존재한다. 바로 19세기 영국에서 귀족 보호주의자들과 중산층 자유무역주의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논쟁이다.

1832년 영국 하원은 그 해의 개혁법을 승인하며 도시의 투표권을 도시의 중산층으로 확대했다. 산업화와 세계 무역 덕분에 영국은 빠르게 부유해졌고, 시장과 무역의 자유를 지지하는 상점 주인들과 상인들로 가득해졌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보수주의자들은 국가의 자유화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당시 보수주의적인 입장에 서 있던 사회 비평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는 보수주의의 적들, 즉 자유주의자들을 비난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당신들은 의회의 자유를 파괴했다. 당신들은 국민의 재산, 출신, 계급, 지혜로 향하는 하원의 문을 닫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들의 정욕과 어리석음으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 당신들은 젠트리 계급과 진정한 애국자들의 선거권을 박탈시켰고, 폭도들을 선동하여 격분시켰으며, 모든 나라와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매국적이고 가장 비보수적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계급[즉, 상점 주인들]의 손에 정치 권력의 균형을 넘겨주었다.

오늘날 위대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내 제조업이 해외의 경쟁자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19세기 영국의 많은 사람은 농업에 대해 비슷한 입장을 견지했다. 농업을 보호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기반을 유지하는 데에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콜리지의 머리 속에서, 그리고 많은 지배 계급 토리당원들의 머리 속에서, 귀족의 농업 이익을 비호하는 보호주의적 중상주의는 '애국' 정책이었다. 이 중 그 어느 것도 시장의 자유, 즉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수준 향상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반보호주의 진영으로 전향하기 이전의 로버트 필 경(Sir Robert Peel)은 1839년에 비슷한 견해를 표명하며 공동체와 국가를 위해 보호주의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뿐만 아니라 필은 자유무역주의자들이 보호주의자들과 달리 도덕 관념의 결여된, 피도 눈물로 없는 공상적 이론가라고 비난했다.

돈을 국가의 행복을 위한 유일한 요소로 여기고 배경에 있는 폴란드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가혹하고 냉혈한 경제학자들은 우리를 안 그래도 척박한 경작지에서 몰아내고 싶어한다. (...) 우리는 그들에게 상업적 이익보다 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note] Irwin, Douglas A., “Political Economy and Peel’s Repeal of the Corn Laws,” Economics and Politics, Vol. I, No. I, Spring 1989. p.45.[/note]

그리고 1843년까지도 필은, 자유무역주의자들이 경제 _'이론'_에 흔들리는 반면에 보호주의자들은 국가의 실질적 이익에 관심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_국가의 특수한 조건과 상황을 잊고, 또 오랜 보호무역하에 형성된 이익 집단들의 존재를 잊고, 오로지 엄격하고 경직된 정치경제학의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원칙들만을 고려한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 (...) 현대 철학과 정치경제학의 이러한 이론들에 심취하고 환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국가의 평화와 행복을 위태롭게 하고 파괴했을 때, 그 노력에 대한 대가는 분명 초라할 것이다. [note]_Ibid. p. 50.[/note]

훗날 필은 이 문제에 관해 입장을 바꾸었지만, 자유무역주의자들을 향한 그의 비판은 이후 수십년에 걸쳐 보수주의적이고 반시장주의적인 활동가들에게 인용되면서 자유방임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을 공격하는 전형적인 비방의 기조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이익과 추상적인 이론에만 온 정신을 쏟지만 '애국자'들은 국가 전체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프로이센의 보수주의자들

이러한 공격은 영국 보수주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와 프로이센의 귀족들은 강력한 민족 국가라는 애국적 비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축소되어야 하고, 제한되어야 하며, 폐지되어야 한다고 더 격렬하게 주장했다.

훗날 프로이센인들은 비교적 온건하게 시장을 비판을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비판을 자유주의를 향한 전면적인 공격으로 탈바꿈시켰다. 역사학자 조너선 스타인버그(Jonathan Steinberg)에 따르면, "버크의 최고의 제자들과 가장 열렬한 독자들은 반동적(reactionary)인 프로이센 지주들과 모든 나라에 있는 '진보'의 적들이었다." 시장이 국가의 필요에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스타인버그가 보수주의 귀족들을 가리켜 그들은 "자유 시장, 자유 시민, 자유 농민,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 자유 사상, 유대인, 주식 시장, 은행, 도시, 자유 언론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있다고 묘사한 것과 잘 들어맞는다.[note] Steinberg, Jonathan. Bismarck: A Life. (Oxford Press, Oxford, 2011.) p. 21.[/note]

이러한 점에서 비스마르크는 영국 자유주의자들의 자유 시장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했으며, 그들을 "맨체스터 정치인 패거리이자 무자비한 돈주머니들의 대표자"라고 묘사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에게 불공정하고, 국가가 가난한 이들을 돕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스스로의 한계까지 노력을 쏟아붓는다. 가능한 한 최대한의 자치이자 규제 없는 환경을 가리키는 자유 방임주의란, 거대 자본이 소규모 기업을 흡수할 기회와 교활하고 간교한 사람들이 무지하고 경험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구조를 추구할 뿐이다. 국가는 오직 경찰로서 기능해야 하며, 특히 이러한 착취를 막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note] Raico, Ralph. “Eugen Richter and Late German Manchester Liberalism: A Reevaluation, “The Review of Austrian Economics, Vol. 4, 1990, pp. 3-25.[/note]

물론 비스마르크는 현대적인 복지 국가의 창시자이자, 유럽 전역에 널리 퍼진 정부 의료 시스템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안토니 뮐러(Antony Mueller)가 지적하듯이, 이 모든 일의 목표는 국민의 단결이라는 이상으로 정당화된 더 강력한 국가 권력에 있었다.

사회 정책은 무엇보다도 우선 국가 정책이었으며, 사회 보장 제도는 노동자들을 사적 시스템 및 공동체적 시스템에서부터 국가의 품으로 유인하기 위한 도구였다. 비스마르크의 눈으로 볼 때 국민의 단결을 이뤄내는 것은 바로 국가였으며, 또한 이 주체는 국가와 시민들 간의 상호 의무 체계를 통해 사회적 단결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비스마르크가 빈곤층에 쏟아부은 거짓된 관심은 인도주의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편의주의의 따른 것에 더 가깝다. 이는 미국의 보수주의자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이 지속적인 정치 연합을 구축하기 위해 표를 이끌어내던 수법과 비슷하다. 배넌은 데이비드 스톡먼(David Stockman)이 지적한 것처럼 "복지국가/전쟁국가/구제금융국가의 현상 유지에 대한 대안으로서 보수주의/포퓰리즘/국가주의를 내세워" 표를 긁어 모았다.

그렇기 때문에 연방 지출 삭감이나 복지 국가의 규모 및 범위 축소와 같은 문제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이 입을 다무는 것 역시 놀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세율 인하라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비웃고 조롱한다.[note] 예를 들어, 터커 칼슨은 자본과 기업에 대한 더 높은 세율을 요구한다. 패트릭 뷰캐넌은 "1950년대에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소득세율이 90퍼센트가 넘었을 때" 미국은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나 더 나은 나라였다"라고 주장한다.[/note]

이러한 국가의 이미지는 버트카의 비전에 잘 부합한다. 버트카에 따르면, 워싱턴의 극소수 정책 입안자들이 미국 대륙 전역의 3억 2천만 미국인들을 위해 결정한 '필수 국가 이익'이라는 모호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워싱턴의 관료들이 경제를 조작할 수 있는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

자유방임주의 덕분에 번영한 공동체들

모든 정부의 계획, 제도, 과세에 대한 대안은 바로, 콜리지에서부터 비스마르크와 칼슨에 이르는 보수주의자들이 진땀을 흘리며 거부했던 자유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며, 문화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말이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이 모든 것이 사적인 가족, 개인, 기업보다는 정부에서 더 잘 관리될 수 있다고 우리를 설득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19세기부터 20세기 초 미국을 번영시키고 시민 의식이 있는 나라로 키워낸 것은 바로 자유방임주의였다.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국민들을 '결속'시키기 위해 강력한 민족국가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현실 속 미국은 고도로 분권화 된 정치 체계, 약한 중앙 정부,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의 경제적 자유를 특징으로 했다.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이 선호하는 국가주의적 반(反)시장 정책이 과거 미국을 부유하고 단결된 사회로 만들었다는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가 사실이다. 20세기 후반동안 국가의 힘이 점점 더 커지면서 공동체는 오히려 더 약해졌다. 오랜 사회적 연결망은 무너져 내렸다. 종교 단체는 쇠퇴했다. 가족은 해체됐다. 비스마르크의 보수주의 복지국가와 유사한 정책을들 덕분에 국가 정책은 "국가와 시민들 간의 상호 의무 체계"를 구축했다. 터커 칼슨이 그토록 필수적이라고 외쳤던 과세, 규제, 보호주의 계획들은 지난 50년간 국가 정책의 초석이 되기도 했다.

옛 보수주의자들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미국을 현대의 거대 국가로 만든 이들은 경제를 넘어서는 이름을 앞세우며 그 모든 것을 세워 나갔다. 필이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상업적 이익보다 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추구했다. 그들은 "냉혈한" 친시장 경제학자들이 밀어붙이는 "엄격하고 경직된 정치경제학의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원칙들"의 제약을 벗어났다.

그렇게 얻은 것이 오늘날의 현상 유지이다. 현대 중상주의, 보호주의, 정부 보조금, 그리고 '양적 완화'가 그 전부이다. 그것은 가족을 위해 필요한 것을 사고, 노동의 결실을 팔며, 평화롭게 사업을 운영함으로써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 앞에 수많은 장애물을 놓는 시스템이다. 그들은 '애국심'과 '국가'를 위해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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