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재산권 ---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1항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천명하고 법률에서 그 예외를 규정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도시 주변을 택지로 개발할 때 그 원칙에 대한 예외를 허용한 것이다. 2항은 소작제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장에서 어떤 재화의 가치가 높을 때 그 재화의 사용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 재화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알려져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바로 그런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토지만큼 가치가 높은 것은 거의 없는 데 경자유전 원칙을 강제하면 토지의 개발이 필요할 때마다 예외를 만들어야 하고 그런 예외를 규정하기 위하여 절차, 시간, 노력 등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규제권자의 권력화는 필연적이 된다. 농민만이 농지를 가질 수 있다는 원칙은 ‘사회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 원칙은 토지 소유에 대한 자유를 과도하게 억제하는 것이다. 소작제는 경자유전이라는 원칙을 토대로 세워진 것이다. 그럼에도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중요하다. 소작제는 농지(논 또는 밭, 모두를 지칭)를 임대차할 때 발생하는 ‘생산구조’(production structure)의 일종이다. 공업 제품 생산에서는 주식회사, 합명·합자 회사 등이 생산구조로 사용된다. 농업에서 소작제가 발달하는 것은 ‘감독의 문제’(supervision problem)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공업에서는 노동자를 한 곳에 모아 통일된 규격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감독의 문제는 크지 않다. 그 때문에 공업에서 노동자들이 공장에 모여 공동으로 재화를 생산하는 것이다. 농업에서는 농민의 생산 행위를 감시·감독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농지를 임대차하지만, 부동산 임대차와 달리, 농지의 소유주인 주주는 농사의 결과물을 일정한 방식으로 나누기를 원한다. 농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노동력이 부족한 사람이나 농지를 소유하지 않았지만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은 농지 임대차, 즉 소작제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므로 헌법에서 소작제를 금지한 규정은 농지 임대차가 왜 생겨나는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회주의자들, 좌파 농업 전문가라는 사람들 등이 만들었다고 추정된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소작제가 발달했던 것은 농업이 가진 그런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왕조 말엽 지주는 소수이고 소작인이 많았던 것은 미간지(未墾地)를 개발할 때 왕으로부터 개발 권한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은 왕족이거나 특권층이었기 때문이다. 즉 소수의 특권층만이 농지를 소유했기 때문에 소작제가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미간지를 개발할 때 그런 미간지를 실제 개발했던 노비는 한 뼘의 농지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농지 소유가 불평등한 상황은 군국일본 지배기에도 큰 변동이 없었지만 조선총독부가 잘못된 경제 제도와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농지라는 부의 불평등은 심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농업이 중심 산업이었던 한반도에서 인구가 증가하면서 농지의 소유 불평등은 더 악화되었다. 군국일본 식민 지배기 말엽에는 소작농이 되는 일마저 어려워지면서 일부 농민은 화전민이 되거나 농업 노동자가 되었는데 그 사실은 농지의 소유 불평등이 얼마나 악화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일부 농민은 도시 노동자가 되기 위해 농촌을 떠났지만 탈농(脫農)한 비숙련 노동자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에 화전민, 농업 노동자 등으로 농촌에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18세기 말∼19세기 초, 전라도 지방의 경우에 총 농가 호수 중에 지주가 5%, 자작농이 25%, 순소작농 및 자소작농이 74%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1907년 탁지부는 한 조사에서 전국에서 자작농민은 30%, 소작농민은 70%에 달했다고 보고 했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통계자료에서는 1913년에 지주와 자작농이 25.9%, 자소작농이 32.4%, 소작농이 41.2%였다. 그러나 1942년에 지주와 자작농이 17.4%, 자소작농이 23.9%, 소작농이 53.8%, 농업노동자 3.1%, 화전민 1.8%였다. 중간 연도에 약간의 기복이 있었지만 무시하면, 1913년 기준으로 1942년을 보면, 소작지가 전혀 없는 농업노동자, 화전민 등이 4.9%로서 새로 생겨났고, 소작농이 12.6%포인트나 증가했으며, 지주와 자작농이 8.5%포인트 감소, 자소작농도 8.5%포인트 감소했다. 농지의 소유라는 관점에서. 이것은 약 30여 년 동안 지주, 자작농, 자소작농 등이 크게 감소하고 소작농, 농업노동자, 화전민 등이 크게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 기간 농지 소유 불평등이 악화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추가하여, 지주, 자작농, 자소작농 등의 감소는 농지의 소유 상태가 하향 평준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하향 평준화는 일본인 지주들이 대거 한반도에 유입된 것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농지 소유의 불평등이 악화할수록 소작료율이 상승했기 때문에 식민지기 소작농민의 삶은 점점 나빠졌다. 군군일본 지배기 농지 소유의 불평등이 악화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군국일본의 농업 중심의 산업 정책, 그 중에서도 수리조합사업을 들 수 있다. 군국일본 식민 지배 기간에 세 차례 경기변동이 발생했는데 그런 경기변동은 소득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궁극적으로는 농지, 즉 부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그 이외에도 농지 소유 불평등을 악화하게 만들었던 원인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1937년 이후의 전쟁 사회주의, 1928∼1929년 한반도 흉작, 1928∼1933년 대공황과 그로 인한 일본 경제의 위기 등은 외부적 요인으로 농지 소유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다. 조선왕조의 농지 소유 불평등이 그대로 승계된 경우도 불평등을 악화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조선 왕조 시대에는 신분제, 부정부패, 왕조 초기의 각종 규제적인 제도 등이 농지 소유 불평등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조선왕조 말엽의 정치·경제 위기는 농지 소유 불평등을 심화시켰을 것이다. 일본인 지주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일본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으면서 농지 소유를 늘려갔기 때문에 한인 농지 소유 불평등은 악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군국일본 지배기에 인구가 증가하면서 농지 소유 불평등이 악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이 한반도를 떠나 만주 등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인구 증가가 농지 소유 불평등 악화를 초래했다는 주장은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군국일본 식민 지배기 소작농민의 삶이 곤궁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는, 소작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농지 소유 불평등이 악화했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농지 소유가 매우 불평등했기 때문이다. 농지 소유 불평등이 악화하면서 소작료율은 상승하지 않을 수 없었고 소작민의 삶은 점점 어려워졌다. 소작료율은 시기별, 장소별, 소작제 계약 방법 등에 따라 모두 달랐지만 군국일본 지배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상승하여 평균 50-60%대로 매우 높았다. 그렇게 높은 소작료율 때문에 소작농민의 삶은 너무 어려웠다. 1939년 이후에 소작료율이 50-60%대로 공식적으로는 이전과 동일했지만 실질적으로는 30%대로 하락했다. 농사 인력의 전쟁 강제 동원, 농우 등의 강제 공출은 사실상 소작제를 운영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소작 농민이 가난했던 원인은 소작제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농지, 즉 부의 소유의 극심한 불평등에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 좌파 농업 전문가들은 소작제가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에 ‘소작제 금지’를 헌법에 규정했다. 현재 농촌의 소작제는 어떻게 되어 있나? 여러 가지 이유로 농지를 소유한 지주는 많아졌지만 그들은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거나 일터가 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소작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업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은 1960년 경제개발 이후에 크게 줄어들었고, 고령화되었지만 기계화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그 결과 소작료율은 거의 영(零)에 근접했다. 한 마디로, 도시 거주 지주는 많아졌지만 소작 농지를 맡아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은 너무너무 적어졌기 때문이다. 소작제 금지 규정은 소작료율을 더 떨어뜨리고 있다. 농민과 도시 지주들 간의 소작은 불법이라는 점을 둘 모두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 좌파 농업 전문가들 등은 1960년 이후 농촌에서 소작과 관련한 변화를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소작제 금지로 인하여 지주와 소작인이 겪는 불편함, 생산성 하락, 소작료율 강제 할인 등에 대해 한 마디도 하고 있지 않다. 잘못된 지식의 폐해는 이렇게 헌법을 통해 우리 삶을 옥죄고 있다. 결론적으로, 경자유전의 원칙, 소작제 금지 등의 규정은 사회주의 제도이고 그만큼 농지의 이용은 생산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농지소유자의 재산권과 비농민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헌법 제121조를 폐지하는 일을 지금 당장 시행하더라도 너무 늦은 것이다. --- 썸네일출처: Gemini
[미제스 코리아 특별칼럼] 헌법 제121조의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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