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9년의 공황은 미국 경제사상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현대 팽창-침체 패턴과 유사한 최초의 거대한 금융공황으로서, 경제 문제, 특히 침체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The Panic of 1819 exerted a profound effect on American economic thought. As the first great financial depression, similar to a modern expansion-depression pattern, the panic heightened interest in economic problems, and particularly those problems related to the causes and cures of depressed conditions.
비공식 번역명
1819년의 공황: 작용과 정책
주제어
호황과 불황(Booms and Busts) 미국 경제(U.S. Economy) 미국사(U.S. History) 경기변동(Business Cycles)
페이지
282
ISBN
9781933550084
출처
Miurray Rothbard - The Panic of 1819: Reactions and Policies (다운로드)
1819년의 공황은 미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최초의 경제 위기였다. 이 책에서 라스바드는 해당 주제를 처음으로 학술적으로 다루었는데, 여전히 가장 설득력있는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라스바드가 비주류 경제학자임에도 이 주제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는 명성이 높다. 일부 미국 역사학자는 라스바드를 이 책의 저자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스바드에 따르면, 1819년의 공황은 경제체제의 모순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여겨졌지만, 사실 정부실책의 결과이다. 1812년 전쟁으로 야기된 변화과 전후의 호황이 해당 공황의 원인이다. 정부가 그 전쟁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돈을 차용했으며, 많은 화폐를 발행했다. 정부는 전국의 은행들이 발행하는 지폐에 크게 의존했다. 이는 해당 지폐를 발행한 은행의 보유고에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 1814년에는 일부 지역의 은행에서 지 최초의 거대한 금융공황으로서, 경제 문제, 특히 침체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1819년의 공황은 미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최초의 경제 위기였다. 이 책에서 라스바드는 해당 주제를 처음으로 학술적으로 다루었는데, 여전히 가장 설득력있는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라스바드가 비주류 경제학자임에도 이 주제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는 명성이 높다. 일부 미국 역사학자는 라스바드를 이 책의 저자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스바드에 따르면, 1819년의 공황은 경제체제의 모순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여겨졌지만, 사실 정부실책의 결과이다. 1812년 전쟁으로 야기된 변화과 전후의 호황이 해당 공황의 원인이다. 정부가 그 전쟁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돈을 차용했으며, 많은 화폐를 발행했다. 정부는 전국의 은행들이 발행하는 지폐에 크게 의존했다. 이는 해당 지폐를 발행한 은행의 보유고에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 1814년에는 일부 지역의 은행에서 지불금 지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전쟁은 이전과 매우 다른 방식으로 생산의 경제적 양식을 변화시켰다. 강력한 통제를 받는 화폐의 족쇄에서 벋어나게 되었고, 지폐 발행에 의한 호황이 시작되었다. 이는 경제를 모래성으로 만드는 결과 다름 없었다. 1817년에 뉴욕에서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것도 이 호황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을 때, 대외무역이 재개되자 전쟁 중에 시작된 일부 추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수입으로 인해 상품가격이 하락하였고, 전쟁 중에 크게 성장한 제조업자들에게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 점에서 오늘날의 독자들은 아직도 계속 논란이 되는 문제, 즉 수입품으로 인한 국내 제조업자의 위기를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제 현상에는, 위기가 있다면 기회도 있다. 예컨대 수출업자와 수입업자는 번영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 여러가지 괴상하고 모순된 해결책이 제안되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광범위한 혼란을 초래하진 못했다. 거짓된 번영이 매우 위험하고, 결국 파산에 이를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그 시대에는 상식이었기 때문에, 사악한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고, 정부는 뉴딜정책과 유사한 경제간섭을 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통화의 재팽창 역시 없었다. 이렇듯 간섭이 없었기 때문에, 1819년의 공황은 매우 빠르고, 평화롭게 종결되었다. 이런 이유로, 1819년의 공황은, 경기침체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

